김병호 金柄琥

학생운동 대통령표창(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산청(山淸)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5)

주요 활동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여 1930년 1월 17일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주읍내를 돌며 만세시위를 주도

관련 사건

광주학생항일운동

생애

1915년 5월 26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강누리(江樓里)에서 태어났다. 진주에 위치한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晉州公立高等普通學校, 현 진주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영향으로 서울 지역에서 학생들의 연합시위가 전개되고, 전국 약 320여 개 학교의 학생 수만 명이 동맹휴학 및 시위를 펼쳤다. 진주에서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이하 진주고보)를 중심으로 시위 움직임이 일어났다. 1930년 1월 16일 저녁 진주고보 학생인 이진하(李鎭河)·정인수(鄭仁守)·정갑생(鄭甲生)·정한영(鄭漢永)·서정태(徐廷泰)·권태익(權泰翊)·조방제(趙邦濟) 등과 함께 다음 날 시위 및 동맹휴교를 단행할 것을 결의하였다. 거사일인 1월 17일 오전 진주고보 교장의 조회 훈시 후 조방제가 연단에 뛰어올라 동맹휴교를 외치며 학생들에게 시위를 독려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에 200명이 넘는 진주고보 학생들과 함께 진주읍내 각 학교를 돌며 시위를 촉구하여 400명이 넘는 학생이 동참하였다.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晉州一新女子高等普通學校, 현 진주여자고등학교, 이하 일신여고) 앞에 모인 학생들은 일신여고 측에서 교문을 걸어 잠그자 담을 넘어 교정에 들어가 ‘노예교육 폐지, 교내 경찰 침입 금지, 광주학생 석방’이라고 적힌 문건을 살포하며 일신여고생들도 시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진주경찰서와 경상도경찰부는 18일 오후부터 즉각 검거 활동을 펼쳤다. 이때 체포되었고, 1930년 3월 1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함께 운동을 이끌었던 이진하·정한영·권태익·정갑생 등과 함께 이른바 보안법 및 주거침입 위반으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정갑생 외 4인)」, 대구복심법원, 1930.5.15. ; 「형사사건부」. ; 「집행원부」.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집,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진주공고보교 무기로 휴교, 17일에 생긴 만세사건 청년학생 21명 검거」, 『동아일보』 1930.1.20. ; 「진주학생사건 10명 송국, 청년과 학생 계속 취조중」, 『조선일보』 1930.2.11. ; 『중외일보』 1930.1.18, 1930.5.10. ; 박찬승, 『한국독립운동사– 해방과 건국을 향한 투쟁』, 역사문제연구소, 2014. ; 진주고등학교 누리집(학교연혁) http://jinju-h.gne.go.kr. ; 단성면 누리집(단성면소개_마을지명유래 https://www.sancheong.go.kr/dans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