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호 鄭鍾浩

학생운동 애족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충남 예산(禮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5)

주요 활동

1928년 예산공립농업학교 독서회 조직, 1932년 좌익협의회 활동, 예산학생동맹 및 토요회 활동

관련 조직

독서회, 좌익협의회, 예산학생동맹, 토요회

생애

1911년 5월 12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덕산면(德山面) 시양리(枾梁里)에서 태어났다. 예산 지역에서 항일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예산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한 후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강봉주(姜鳳柱)·한정희(韓定熙) 등과 함께 독서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한인 학생에 대한 학교에서의 차별정책에 반대하며 결성된 독서회는 항일투쟁에 대한 서적을 읽고 토론하며 민족정신 고취에 주력하였고, 문맹퇴치 운동, 문자보급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4월 예산 출신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의거에 자극을 받았다. 그해 5월 박정순(朴正淳)·박희남(朴熙南)·오일규(吳日圭) 등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던 학교의 하급생 독서회와 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항일학생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을 통합하기로 하였다. 예산농업학교의 독서회는 좌익협의회(左翼協議會)로 통합되었고, 연구부·조직선전부·에스페란토어부 등으로 조직을 갖추었다. 이때 조직선전부를 담당하여 조직 강화에 주력하였다. 1932년 6월 학교에서 일요일임에도 권농일이라는 이유로 동원령을 내리자 회원들과 함께 동맹휴교를 결행하기로 하였다. 행사 강행을 위한 학생 동원의 부당성, 일본어를 국어로 표기하는 반민족적 처사의 시정, 일본인 학생과의 차별정책 개선, 한인 교사의 확대 등을 주장하며 동맹휴교를 단행하였다. 1932년 7월 일부 학생들이 동맹휴교로 인해 퇴학처분을 당하고 그로 인해 일제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좌익협의회는 활동을 일단 중지하였다. 그해 9월 좌익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조직 재건에 합의하고, 예산학생동맹(禮山學生同盟)을 설립하였다. 예산학생동맹의 선전부를 담당하여 학교 내의 동지 규합을 진행하고 지역 내외의 학생운동 조직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의 감시가 다시 심해지자 조직의 명칭을 토요회(土曜會)로 변경하였다. 1932년 11월 극단 만경좌(萬鏡座)가 예산 시장터에서 ‘동방의 빛’이라는 연극을 공연하였는데, 일제가 만주의 마적으로부터 한인을 보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해당 연극은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회원들과 함께 공연관람 거부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극단에 공연 중단을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 극단원들과 충돌이 일어났고 1932년 1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3년 3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공주지방법원, 1933. 3. 30. ;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33. 5. 15. ; 『동아일보』, 1932. 12. 20, 1933. 3. 29, 4. 2. ; 『조선일보』, 1933. 2. 21, 5. 7·9·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