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 鄭昱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정태우(鄭泰愚)
출신지
전남 영광(靈光)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5월 광주농업학교 성진회와 독서회 가입,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 참여, 1937년 동방약속민족옹호운동 참여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성진회
생애
1909년 9월 20일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영광면(靈光面) 백학리(白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태우(鄭泰愚)이다. 광주학생운동·동방약소민족옹호운동 등에 참여하였다. 1927년경 광주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학년 재학 당시 상급생이었던 문승수(文升洙)와 유치오(兪致五)의 권유를 받고 성진회(醒進會)에 가입하여 독립을 목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성진회는 1926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장재성(張載性)·왕재일(王在一)과 광주농업학교 학생인 박인생(朴仁生)이 중심이 되어 임주홍(林周弘)·정우채(鄭瑀采)·채영석(蔡泳錫)·정남균(鄭南均)·김한필(金漢苾)·정종석(鄭鍾奭) 등과 수차례에 걸쳐 모임을 한 후 결성한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1928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김몽길(金夢吉)·김시성(金時成)·최규창(崔圭昌)과 광주농업학교 학생 김복근(金福根)·유치오 등이 주도한 동맹휴교에 참여하였다. 여기서 광주지역 학생들과 함께 한국의 독립과 한국인 노예화 교육의 폐지를 주장하였다. 그해 9월 30일 동맹휴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처분을 받았지만, 같은 해 12월 3학년생으로 다시 편입하였다. 1929년 4월 조길룡(曺吉龍) 등과 함께 광주 무등산(無等山)에서 회합을 가지고 일제의 지배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달성시킨다는 취지에서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교양부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이 시점에서 결성된 독서회는 1929년 6월 도쿄(東京) 주오대학(中央大學)에 재학 중이던 장재성이 광주에 돌아와 각 학교의 비밀결사 조직을 종용하여 결성된 독서회중앙부(讀書會中央部)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1월 12일 제2차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보안법·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7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자신의 행동이 불법적인 것이 아니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판단하고 항소하였다.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365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1937년 9월 19일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동방약소민족옹호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다시 고초를 겪었다. 193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예심면소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10. 18.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1. 6. 13. ; 「집행원부」. ; 「광주농업학교 학적부」.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편,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