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춘 崔長春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보성(寶城)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31년 조선청년독서회 조직
관련 사건
조선청년독서회 사건
관련 조직
조선청년독서회
생애
1909년 1월 27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보성면(寶城面) 보성리(寶城里)에서 태어났다. 보성공립보통학교(寶城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보성우편소(寶城郵便所)의 집배원으로 근무하다가 낮은 임금과 민족 차별에 회의감을 느끼고 1928년 11월 사직하였다. 이후 공산주의 서적을 읽고 얻은 지식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 배격하여 독립을 쟁취하고, 노동자·농민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932년 1월 15일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가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낙향한 김기수(金麒洙)와 뜻을 같이하여 조선청년독서회(朝鮮靑年讀書會)를 조직하였다. 보성군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참여를 독려하여 김봉수(金鳳洙)·김돈수(金燉洙)·정계옥(鄭桂沃) 등을 가입시키고, 한국의 독립과 공산주의 사상의 실현 방략을 논의하였다. 독서회를 운영하던 중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을 기하여 보성면 보성리 일대에 격문을 살포하기로 계획하고, 독서회원들과 이에 대해 논의하였다. 4월 27일 김봉수·문남일(文南一) 등의 동의를 얻은 뒤 무산계급 대중의 단결과 궐기를 촉구하였다. 강도와 다를 바 없는 일제와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 동안 김봉수·정계옥·안병석(安秉石)·김병용(金炳鎔)과 함께 격문 38매를 손으로 써서 작성하였으며, 보성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모두 약 700매를 등사하였다. 거사 당일인 5월 1일 오전 4시경 문서를 배포하기 위해, 보성경찰서를 기준으로 상하 2개 조로 나누었다. 정계옥·안병석과 함께 보성리 일대를 순회하며 벽과 전신주 등 눈에 잘 보이는 장소에 격문을 부착하고, 상가 앞·마을 입구 등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약 700매의 격문을 살포하였다. 격문을 발견한 일제 경찰이 주도자 색출에 나섬에 따라 붙잡혔다. 가혹한 취조를 받고, 일제의 한국 통치를 부정하는 의도를 가지고 불온한 문서를 작성하고 동료들에게 이를 교사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32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과 폭력행위처벌에 관한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93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 1932. 6. 29.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2. 9. 30. ; 「수형인명부」. ; 「집행원부」. ; 「형사사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