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후 洪敏厚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나주(羅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2)
주요 활동
1929년 11월 나주학생시위 주도
생애
1909년 4월 27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봉황면(鳳凰面) 죽석리(竹石里)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나주 학생시위에 참여하였다. 1929년 11월 11일 유찬옥(柳贊玉)은 광주학생운동의 발단이 나주에 있는 기차 통학생의 갈등이라 생각하여 나주에 사는 한국인 학생이 이를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여겼다. 이에 수감되어 있는 학생들을 석방시킬 수단으로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나주 신간회(新幹會) 사무소 박공근(朴恭根)을 찾아가 지도를 부탁하여 수락을 받았다. 이때 공립 나주농업보습학교(羅州農業補習學校)에 학생으로 다니던 중 1929년 11월 13일 유찬옥으로부터 권유를 받아 박동희(朴東熙)의 숙소인 나주면(羅州面) 북문정(北門町, 현 나주시 성북동) 박준삼(朴準三)의 정미소에서 열린 비밀 회동에 참가하였다. 장이 열리는 11월 17일에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도로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당국의 조치를 비난하고 수감된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같은 달 14일에 다시 모였을 때 17일부터 농번기로 농업보습학교가 5·6일간 임시휴교를 하게 되어 학생동원이 어렵다고 판단해 계획을 연기하였다. 11월 25일 밤 박공근의 집에 모여 27일 장날에 시위운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배포할 전단 등을 만들어 올 것을 협의하였다. 26일 밤 박공근의 집에 다시 모여 27일 정오에 학교 휴게시간을 이용하여 학교의 생도를 규합하고 나주 읍내에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을 돌면서 ‘조선민중과 학생만세’를 외치고 전단을 살포하며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유창옥이 작성하고, 박공근이 수정한 ‘대중이여. 학생 여러분이여. 알고 있는가. 우리들이 어떠한 강압과 폭압을 받고 있는가를’과 ‘격(檄)’이란 전단 원고를 받아 함께 인쇄·등사한 뒤 다음 날 배포를 위해 맡아두었다. 11월 27일 정오 농업보습학교와 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전단을 배포하였다. 시위 인원이 갖춰지자 앞장서서 두 학교의 학생들을 2열로 맞추게 한 뒤 나주 읍내의 남문정(南門町, 현 나주시 남내동)·본정(本町, 현 나주시 성북동과 송월동 인근)을 지나며 전단을 뿌리고 ‘조선민중만세’와 ‘조선학생만세’를 외치며 나주 시장에 도착하였다. 시장에는 장날이라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여기에 전단을 나누어주며 만세를 외쳤다. 이후 과원정(果院町, 현 나주시 과원동) 방면을 돌아서 행진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3월 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해 4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중 5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2. 8.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3. 5.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0. 4. 2. ; 『조선일보』, 1930. 1. 4, 2. 11·16·28. ; 『동아일보』, 1930. 1. 5, 2. 28. ; 『매일신보』, 1930.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