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도선 玄道善

학생운동 건국포장(1993)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제주(濟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1993)

주요 활동

1931년 제주공립농업학교 부당졸업사정 항의

관련 조직

제주공립농업학교

생애

1911년 10월 10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좌면(舊左面) 하도리(下道里)에서 태어났다. 제주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1년 3월 6일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예정자 가운데 김원요(金源堯)·양두옥(梁斗玉)·신창진(愼昌珍)이 졸업사정회에서 평소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김원요는 퇴학, 양두옥·신창진은 유급처분을 받았다. 같은 달 7일 졸업식에서 분개한 김원요는 교무실에 들어가 담임교사 야마가와(山川助夫)에게 퇴학처분의 이유를 따지며 강력히 항의하였다. 그러자 담임교사가 일제 경찰에 알렸고, 김원요는 체포되어 제주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이를 계기로 의협심이 강한 동급생들과 함께 향후 계획을 논의하였다. 같은 달 9일 우선 양두옥과 신창진은 교장실로 찾아가 교장 스기사키(杉崎勝藏)에게 퇴학과 유급조치의 부당함을 강력하게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홍계표(洪季杓)는 교사 다카하시(高橋憲次郞)와 야마가와에게 김원요의 수감에 대해 부당함을 따졌다. 이때 교사 최계순이 ‘선생에 대한 불손한 태도가 무어냐’고 문책하자, 홍계표의 신호에 따라 고태리(高泰利)·신찬익(申璨翊) 등 6명과 함께 교무실로 들어가 내부 기물을 던져 박살내고 격렬하게 학교 당국의 차별교육에 항의하였다. 이 일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붙잡혀 제주경찰서로 끌려갔다. 같은 해 3월 25일 제주경찰서에서 동료 20여 명과 함께 목포검사국으로 송치되어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해 6월 12일 예심이 종결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8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1932년 3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목포형무소에서 미결 기간인 약 1년 동안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1. 3. 11·14·31, 8. 24·31. ; 『조선일보』, 1931. 3. 14·31, 6. 20, 8. 3, 1932. 3. 4. ; 『매일신보』, 1932. 3. 4.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제주도지편찬위원회,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문화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