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완표 洪玩杓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01)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북 순창(淳昌)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01)

주요 활동

1943년 무등독서회 대표로 선정, 화령회에서 지엽조직을 결성

관련 조직

광주사범학교 무등독서회, 화령회

생애

1927년 9월 20일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금과면(金果面) 모정리(茅亭里)에서 태어났다. 항일 학생운동단체 무등독서회(無等讀書會)·화령회(和寧會) 등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43년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 3학년 재학 중 조규학(趙圭學) 등과 함께 단파방송 등의 경로를 통하여 미군의 일본 폭격, 태평양전쟁의 상황, 해외 독립운동의 동향을 파악하고 일제의 패전을 예측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호응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무등독서회를 결성하였다. 무등독서회는 독서를 통해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일제가 패하면 무장투쟁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달성하는 것을 방침으로 삼았다. 이후 대표로 선정되어 전주사범학교(全州師範學校)와의 연합 조직 결성을 시도하였다. 이후 한국어 서적을 읽으며 민족의식 고양, 독립 쟁취의 의지를 다졌다. 또 각종 전단·벽보를 금남로(錦南路) 일대와 일본인의 집 등에 부착하여 일제 패전 인식과 반일 여론을 확산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학교에서는 광주비행장 활주로 공사, 송탄유 채취 등 근로동원과 군사훈련을 태업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순창농림학교(淳昌農林學校) 3학년 이희동(李熙東)의 주도로 14명이 참여하여 화령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지엽조직을 맡아 학교에서 동지를 모으고, 방학 때에는 정보 교환과 업적 보고 등의 활동을 통해 항일투쟁의 방법을 구체화하였다. 1943년 7월 홍석길(洪錫吉)이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활동하던 중 순창으로 보낸 연락문이 발각되어 화령회의 정체가 드러났고, 그해 12월 이희동 등 5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심문을 받은 뒤 1944년 1월 13일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光州師範學校 學籍簿」, 1941. ; 장인모, 「조선총독부의 초등교원 정책과 조선인 교원의 대응」,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