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표 洪建杓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남양(南陽)
이명(별칭)
자 : 경중(敬中), 호 : 호산(壺山), 창씨명 : 홍원건표(洪原建杓)
출신지
전북 익산(益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42년 흑백당 행동책으로 활동,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무기 탈취
관련 조직
흑백당
생애
1923년 9월 17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금마면(金馬面) 신룡리(新龍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경중(敬中), 호는 호산(壺山)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홍원건표(洪原建杓)를 썼다. 경복중학교·보성전문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42년 항일 비밀결사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 경복중학교 3학년 재학 중 이현상(李賢相) 등과 함께 항일운동에 대한 뜻을 모아 모임을 갖기 시작하였다. 1941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장의찬(張宜燦)·성익환(成益煥)·주낙원(朱樂元) 등과 교류하였고, 서로의 집을 회합장소로 활용하며 정보를 나누었다. 1942년 4월 5일 오전 10시 주낙원의 집에서 경복중학교 17회 졸업생 7명과 중앙학교 졸업생인 남상갑(南相甲) 등과 함께 모여 창당 발기를 하고, 모임의 명칭을 흑백당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선언문·강령·부서 등을 정하였는데, 명의택(明義宅)과 함께 행동책을 맡기로 하였다. 이후 조직 확대를 위해 활동하며 같은 보성전문학교생인 김창흠(金昌欽)을 추천해 입당시켰다. 흑백당은 “일본인 주택가 방화, 일본인 처단, 친일파 처단”이라는 행동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이현상과 함께 모교인 경복중학교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무기를 탈취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무기고 열쇠를 만들어 침입해 일제 38식 소총 2자루와 실탄을 탈취한 후, 삼청동에 위치한 산 속에 깊숙이 감추어 두었다. 이후 학도병 징집 거부와 한국광복군이 국내진공을 하면 함께 투쟁한다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금 마련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10월 김창흠이 충북 괴산경찰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가택수색을 당하였면서 흑백당 관계 문서가 발각되었다. 이를 통해 흑백당이 알려지게 되었고,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당시 종로경찰서 유치장으로 사용되던 태화여자관(泰和女子館)에 구금되어 고초를 겪었다. 1944년 4월 대전검사국을 거쳐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심문을 받은 뒤 10월 초 기소되었다. 같은 해 12월 6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상고하였지만, 2심을 거쳐 1945년 2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겪다가 광복이 되면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고등법원, 1945. 2. 1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김호일, 「1940년대 항일학생운동연구 흑백당의 활동을 중심으로」, 『중앙사론』 7, 중앙대학교 중앙사학연구소,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