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생 黃鎭生

학생운동 건국포장(1993)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창원(昌原)
출신지
경남 진주(晉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1993)

주요 활동

1930년 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는 시위 주도, 1932년부터 독서회 활동 전개

관련 사건

진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사건

관련 조직

진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생애

1914년 5월 2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대평면(大坪面) 신풍리(新豊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진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면서 1930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1932년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29년 11월 전라남도 광주(光州)의 학생들은 일제의 민족차별을 규탄하고, 식민지 노예교육 반대·신사참배 반대 등을 외치며 대대적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항일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1930년 1월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3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교내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행진을 계획한 뒤, 만세를 외치다가 1개월간 정학을 당하였다. 1932년 11월 27일 진주읍 하숙집에서 한계수(韓桂壽)·이증삼(李曾參)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한 후 사회주의 서적을 윤독하며, 일제의 기만적 식민통치를 비판하였다. 또한 교내에서 조직의 확대를 도모하며 학우들을 중심으로 회원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33년 12월 진주경찰서 일제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독서회의 서적이 압수되었고, 다른 회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해 12월 28일 일제는 독서회의 활동이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한 비밀결사의 사상사건이라 하여 사건을 진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다. 1934년 8월 3일 진주지방법원에서 독서회의 활동이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체제변혁을 목표로 하는 불온한 결사를 만들고 활동한 것이라고 하며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3년 12월부터 구금 상태로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미결수 신분으로 약 8개월 동안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朝鮮重大思想事件經過月表(六)」, 『사상월보』, 1934. ; 『동아일보』, 1930. 1. 18, 1933. 12. 17·30, 1934. 5. 9, 7. 31, 8. 7. ; 『조선일보』, 1930. 1.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