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선 皇甫善

학생운동 애족장(1993)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영천(永川)
이명(별칭)
자 : 경가(慶可), 호 : 화경(華瓊)
출신지
경북 영천(永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3)

주요 활동

구화회 서무부 위원, 혁우동맹 야체이카, 적우동맹 조사연구부 위원·제2그룹 책임자

관련 사건

항일비밀결사사건

생애

1908년 (음)12월 24일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화남면(華南面) 구전리(龜田里)에서 아버지 황보곤(皇甫坤)과 어머니 박성동(朴星洞) 사이에서 7남 2녀 가운데 5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경가(慶可), 호는 화경(華瓊)이다. 학업을 위해 홀로 대구로 이주하여 1926년 수창공립보통학교(壽昌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27년 11월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같은 학교의 김성칠(金聖七)·정소수(鄭小秀)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구화회(丘火會)를 조직하였다. 지(知)·각(覺)·약(躍)을 강령으로 정하고 산하에 서무, 문화, 재무의 3개 부서를 두었으며, 서무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조직 결성 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공산주의의 연구와 선전에 노력하고, 동지 규합에 힘썼다. 1928년 1월 항일비밀결사 혁우동맹(革友同盟)에 가입하였다. 혁우동맹은 1927년 12월 대구에서 사회주의 세력과 학생이 연계하여 조직한 항일비밀결사인 ‘신우동맹(新友同盟)’이 동맹원의 증가로 비밀 누설을 우려하여 보다 완전한 조직 결성을 명분으로 개편된 조직이었다. 혁우동맹의 강령은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전술의 함양, 민족해방운동의 실천이었다. 같은 학교 학생 김성칠·김낙형(金洛衡), 대구농림학교 학생 한상훈(韓相勳)과 함께 제4야체이카에 소속되어 세계운동의 정세, 정치경제 문제, 한국 사회운동의 방향 전환 등을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1928년 2월 혁우동맹은 졸업을 앞둔 동맹원을 포괄하고, 대구지역 학생들의 연합조직으로 확대하여 ‘적우동맹(赤友同盟)’으로 전환하였다. 대구중학교 학생 박득용(朴得龍)과 함께 출판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4월 개편된 조직에서 같은 학교 학생 이봉재(李鳳在)와 함께 조사연구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적우동맹은 회원을 그룹별로 나누어 매월 1회 간부회 및 월례회(月例會)를 개최하고, 매주 1회 그룹회의를 열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 학생을 담당하는 제2그룹의 책임자가 되어 김일식(金一植)·정소수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8년 4월 적우동맹은 결성 직후 동맹원 자격문제와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발생한 한국인 학생의 강제전학 조치에 대한 대응방법에 이견이 생겨 해체되었다. 구화회도 적우동맹의 해산과 동시에 조직의 발각을 우려하여 5월에 해산하였다. 1928년 9월부터 일본인 교장과 일본인 선생의 배척 등을 요구하며 두 차례 일어난 대구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동맹휴학은 11월까지 계성학교, 신명학교 등 대구 전역의 학교로 확산되었다. 동맹휴학은 항일비밀결사의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기존의 일회적이고 고립분산적인 운동에서 벗어나 동시다발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이었고, 기존의 자연발생적인 투쟁에서 목적의식적인 투쟁으로 발전시킨 학생운동이었다. 대구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을 주도한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하였고, 동맹휴학사건 조사과정에서 항일비밀결사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1928년 11월 6일 다른 관계자 40여 명과 함께 붙잡혀서 조사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1929년 10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 산입)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1930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까지 1년 4개월 여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0. 3. 11. ;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안동독립운동기념관, 『국역고등경찰요사』, 2010). ; 『중외일보』, 1928. 10. 2, 1929. 9. 19, 1930. 2. 26. ; 永川皇甫氏大宗會, 『永川皇甫氏世譜』, 회상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