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범 姜文範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진주(晋州)
출신지
제주(濟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주도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독서회사건, 혁우동맹(革友同盟)사건

관련 조직

전남사범학교, 전남사범학교 독서회

생애

1910년 8월 18일 전라남도 제주군 좌면(左面) 상예리(上猊里)에서 강형규(姜衡奎)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중문리(中文里) 진수의숙(進修義塾)에서 수학한 후 제주공립농업학교(齊州公立農業學校)를 졸업하였다. 전남사범학교(全南師範學校) 재학 중 1929년 7월 수피아여학교 뒷산에서 장재성(張載性)의 지도를 받으며 조선의 독립과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강달모(姜達模)·김재용(金在瑢)·박노기(朴魯淇)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9월 광주형무소 뒷산에서 조직을 개편할 때 조직교양부 위원에 선임되었다. 1929년 11월 3일과 12일 광주사범학교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30년 3월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1932년 혁우동맹(革友同盟)사건으로 검거되어 이듬해 2월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40년에는 가파도(加波島)의 신유의숙(辛酉義塾) 교사로 재직하면서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광복 후 1947년 3·1절 기념 시위 사건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10.18.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1.6.13. ; 『동아일보』 1930.10.12, 1932.12.11, 1933.2.8, 1933.3.3, 1933.4.22. ; 『매일신보』 1930.7.22, 1931.6.15. ; 한규무,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41 : 광주학생운동』, 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