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朴賢淑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박정숙(朴貞淑)
출신지
전남 광주(光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비밀결사 소녀회 활동, 광주학생운동 참여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소녀회
생애
1914년 3월 28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송정면(松汀面) 소촌리(素村里)(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정숙(朴貞淑)이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女子高等普通學校, 현 전남여고, 이하 광주여고보)에서 수학하였다. 광주여고보 재학 중 학교 내 비밀결사 독서회인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소녀회는 1928년 11월 초 광주여고보 재학생 장매성(張梅性)의 주도로 6명의 학생들이 조직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독서회라는 형태를 띠었으나 조국 독립과 여성 해방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였다. 장매성을 비롯한 회원 박옥련(朴玉蓮)·고순례(高順禮)·장경례(張慶禮)·암성금자(岩城錦子)·남협협(南俠俠)은 소녀회 결성 이후 조직을 확대하면서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에 뜻을 같이하여 2학년 재학 중인 1929년 5월 박계남(朴繼男) 등과 함께 소녀회에 가입하였다. 소녀회에서 매월 1회 개최하는 연구모임을 참여하여 사회주의 연구 모임을 갖고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매달 10전의 회비를 내어 사회과학 서적을 구입하여 연구하고, 남학생 독서회와도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등 외연을 확대시켜 나갔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학생 시위대가 광주여고보 앞을 지나가자 이 시위대에 참가하였다. 부상당한 남학생들을 소녀회 회원들과 함께 치료하고 동시에 치마에 돌을 싸서 날라주면서 가두시위를 지원하였다. 이러한 항일 활동이 발각되어 1930년 1월 15일 소녀회 회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광주여고보에서 퇴학을 당하고, 광주지방법원에서 예심(豫審)을 거친 후 같은 해 7월 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930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공판이 열렸다. 변호사 김병로(金炳魯) 등이 변론을 담당하였다. 검사가 징역 1년을 구형하였으나 변호인단은 무죄를 주장하였다. 제1회 공판 후 박계남·암성금자·박옥련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나와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10. 6. ; 『동아일보』, 1930. 9. 29·30, 10. 1. ; 『조선일보』, 1930. 4. 18, 10. 3. ; 『중외일보』, 1930. 7. 5, 9. 30.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