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경 朴夏卿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8)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서울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8)

주요 활동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 배화여학교 만세운동

관련 사건

1920년 배화여학교 만세시위

생애

1904년 12월 29일 서울 인사동(仁寺洞)에서 태어났다. 1920년 당시 배화여학교(培花女學校) 고등과에 재학하였다. 이때 1919년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다른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배화여학교는 1898년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의 캠벨(J. P. Campbell) 선교사가 캐롤라이나학당으로 설립한 학교로 1910년 4월 1일 배화학당으로 교명을 개칭하였다. 4년제의 중학과와 4년제의 소학과를 함께 설치하였다. 배화여학교는 많은 애국 지사를 배출하였는데 그 중 남궁억(南宮檍)이 1910년 10월 교사로 부임해 8년 동안 재직하면서 여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배화여학교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남궁억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세운동이 거족적이며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1년이 지난 1920년 3월 1일 오전 8시 30분 이수희(李壽喜)·김경화(金敬和) 등과 함께 학교 기숙사 뒤편 언덕 위와 교정(校庭)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배화여학교 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의 다른 학교들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 만세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이러한 만세운동의 주도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함께 했던 학생 23명과 재판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형이 확정되어 풀려나기 전까지 서대문감옥에 미결수로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 학교로 복귀하여 1923년 배화여학교 고등과 제12회로 졸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20. 4. 5.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 『독립신문』, 1920. 3. 25. ; 『매일신보』, 1920. 4. 6. ; 『신한민보』, 1920. 4. 20, 5. 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2권, 1971. ; 배화여자중고등학교, 『배화칠십년사』,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