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채 朴準埰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밀양(密陽)
이명(별칭)
호 : 해촌(海村)
출신지
전남 나주(羅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촉발·참여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생애
1914년 6월 28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나주면(羅州面) 남내동(南內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호는 해촌(海村)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중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광주고보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0월 30일,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현 전남여자고등학교) 학생인 사촌 누이 박기옥(朴己玉) 등이 나주역에서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 후쿠다 슈조(福田修三) 등 일본인 학생들에게 희롱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목격하고 후쿠다를 꾸짖는 과정에서 후쿠다가 한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일삼자 양측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일본인 학생들의 잘못은 묵인하고 한국인 학생들만을 질책하는 모리타(森田) 순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구타당하였다. 다음 날인 10월 31일 기차 안에서 다시 후쿠다에게 전날의 일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다시 무력 충돌을 빚었으며 이를 계기로 11월 1일 두 학교 학생 백수십 명이 광주역 앞에서 서로 대치하였다. 11월 3일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격돌하자 광주고보 학생들과 함께 광주역 앞에서부터 시내로 행진하였다. 이와 같은 사건들로 인해 같은 달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과 보안법 위반, 상해 피의사건 등으로 광주경찰서에 붙잡혀 조사를 받으며 3개월의 고초를 겪었다. 1930년 2월 근신 처분을 당한 박기옥이 학교를 자진 퇴학했을 때,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하였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양정고등보통학교(養正高等普通學校, 현 양정고등학교)로 전학하였고,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중외일보』, 1930. 2. 8. ; 『조선일보』, 1929. 11. 5·6, 12. 28, 1930. 2. 26. ; 『동아일보』, 2001. 3. 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50, 200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8·9권, 1976·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