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렬 朴東烈

학생운동 대통령표창(1999)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월성(月城)
출신지
경북 청송(靑松)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9)

주요 활동

1943~1944년 명성회에 가입하여 무장봉기 추진

관련 조직

명성회

생애

1927년 8월 29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부남면(府南面) 감연동(甘淵洞)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월성(月城)이다. 1941년 안동(安東)에 위치한 서부소학교(西部小學校)를 졸업하고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농업과에 입학하였다. 안동농림학교에서는 학생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 형태의 학생운동이 전개되었다. 1943년 4월 하순 안동농림학교 9회생 이정선(李貞善)·김한룡(金漢龍)·권태염(權泰琰) 등과 함께 면학과 민족 의식 계몽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단체인 명성회(明星會)를 조직하였다. 이정선을 회장으로 선출하였고 혈서로 회원 각자 이름을 적어 결의를 다졌다. 명성회는 회지 『아케보노(あけぼの, 새벽)』를 발행하였으며, 곧 정세가 유리할 때를 기다려 무장봉기에 나설 것을 도모하였다. 한편, 안동농림학교에는 1944년 10월 권영동(權寧東)·윤동일(尹東一)·황병기(黃炳基) 등의 학생 중심으로 비밀결사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무장봉기 방안을 모색하고 투쟁 조직을 만드는 데 합의하고 구체적 행동 계획을 추진하였다. 1944년 11월 명성회와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연대투쟁을 통해 무력 봉기를 일으키게 되면 함께 하기로 하였다. 봉기 계획은 조선독립회복연구단에서 세우고, 명성회는 이 계획에 따르기로 하였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이 일본육군기념일이었던 1945년 3월 10일을 거사일로 정하자, 명성회 회원도 함께 행동하기로 하였다. 1945년 2월 고등계 형사들의 사찰이 심해지면서 조선독립회복연구단 단원 이준택(李準澤)·이승태(李承台)가 체포되고, 이정선이 3월 12일에 경찰에 붙잡혔다. 단원이 검거되면서 조직이 노출되자 3월에 단원이 모두 붙잡히면서 투쟁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감옥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광복 이후 공무원이 되어 1973년에는 군위군 내무과장에 재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안동농림40년사편찬위원회, 『안동농림40년사』, 안동농림고등학교, 197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8권, 1976. ; 안동농림50년사편찬위원회, 『안동농림50년사』, 안동농림고등학교, 1983. ; 신승훈, 「해방직전(1943~19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안동사학』 제12집, 안동사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