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득룡 朴得龍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밀양(密陽)
이명(별칭)
박대득(朴大得)
출신지
경북 대구(大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6)
주요 활동
1927~1928년 비밀결사 신우동맹·혁우동맹·적우동맹 등에서 활동, 1930년 대구형무소 수감자 만세운동 주도
관련 사건
신우동맹, 혁우동맹, 적우동맹
관련 조직
신우동맹, 혁우동맹, 적우동맹
생애
1908년 7월 11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칠성동(七星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이명으로 박대득(朴大得)을 사용하였다. 1928년 3월 대구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28년 대구지역에서 비밀결사에 참여하던 중 붙잡혀 고초를 겪었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대구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7년 12월 10일 동지들과 함께 대구부 남산정(南山町) 백대윤(白大潤) 집에 모여 조직적·통일적으로 단결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응용할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할 것에 찬성하였다. 이에 따라 신우동맹(新友同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제3그룹의 책임자가 되었으나, 다시 완전한 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같은 달 해산하였다. 1928년 1월 윤장혁(尹章赫)·상술상(尙戌床)·조은석(趙銀石)과 함께 조선공산당의 세포조직인 ‘야체이카’를 조직하여,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전술을 함양하고 조선민족의 해방운동을 한다”라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간부회와 야체이카회를 열어 신사상 연구를 하였으나, 2월 중순 또다시 단체를 해산하였다. 1928년 2월 26일 다시 비밀결사인 적우동맹(赤友同盟)을 조직하였고, 출판부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28년 9월 일어난 대구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과정에서 비밀결사 활동이 일제 경찰에 포착되어, 같은 해 11월 초에 붙잡혔다. 1929년 10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30일)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30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 판결에서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를 시도하다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은 장진홍(張鎭弘)이 1930년 7월 31일 갑자기 대구형무소 안에서 사망하자,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윤장혁·김선기(金善基)·조은석·유찬옥(柳贊玉)·김기용(金基用) 등과 함께 수감자 1,500여 명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는 7월 31일 오후 8시 반에 장진홍의 시신을 옮기려는 일제 측 행위에 맞서 일어났다. 수감자들은 만세를 외치고 사인 규명을 요구하며 감방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같은 해 9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건조물손괴로 징역 8월을 추가로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1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1931년 11월 29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0. 3. 11. ; 「신분장지문원지」. ; 『동아일보』, 1928. 11. 9, 1929. 10. 22. ; 『조선일보』, 1928. 9. 29, 12. 4·14·24, 1930. 8. 2·5, 9. 15·19, 11. 3. ; 『중외일보』, 1930. 8. 29, 9. 4. ;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안동독립운동기념관 편, 『국역 고등경찰요사』,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자료총서 3,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