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련 朴玉連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광주(光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8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조직, 1929년 광주학생운동 시위 참여
관련 사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
관련 조직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
생애
1914년 12월 12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사동(社洞)에서 태어났다. 1928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자고등학교) 재학 중에 비밀결사단체인 소녀회(少女會)를 결성해서 활동하였으며,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소녀회는 1928년 11월 초순 전남사범학교 뒷산에서 광주여고보 학생 장매성(張梅性)을 중심으로 박계남(朴繼男)·장경례(張慶禮)·남협협(南俠俠) 등이 주도하여 결성되었다. 소녀회 결성 당시 주도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으며, 주로 민족문제와 여성해방운동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할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또한 매월 1회씩 회합하여 민족운동의 이론과 실천방안을 토의하며, 회원 확충을 위해 각자 노력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박계남·박채희(朴采熙)·박현숙(朴賢淑)·김금희(金錦熙)·김귀선(金貴先) 등을 입회시켜 세력을 확장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소녀회 회원들과 함께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구속된 학생들을 돕기 위한 모금에 나서기도 하였다. 1930년 1월 소녀회 회원들과 함께 구속된 학생들의 석방을 내세우며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을 주도하였다. 그러다가 1930년 1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소녀회 활동을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해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10. 6. ; 「수형인명부」.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매일신보』 1930.10.7. ;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 1分冊, 東京 : 原書房, 1967. ; 강재언, 『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 風媒社, 1979.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편,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74.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