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朴相俊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제주(齊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동조 시위

관련 사건

목포공립상업학교

관련 조직

목포공립상업학교

생애

1911년 9월 3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면(濟州面) 도두리(道頭里)에서 태어났다. 1929년 전남 목포공립상업학교(木浦公立商業學校) 4학년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지지하는 2차 시위에 참여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항일학생 운동이 일어나자 11월 9일 진상조사를 위해 목포공립상업학교의 5학년생 최창호(崔昌鎬)와 3학년생 이인형(李麟炯)이 광주로 파견되었다. 10일 장재성(張載性)으로부터 협력을 부탁받은 이들은 귀향하여 학교의 독서회원들과 협의하여, 11월 19일 동교의 모든 한국인 학생을 규합하여 구속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동조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11월 15일 4학년 임성춘林(晟春)과 함께 하숙하던 목포 양동(陽洞) 이태옥李(太玉)의 집에서 이인형에게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진상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 요구를 위해 4학년생들의 동참을 요청받고, 동급생들의 의견을 정리하여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겠다고 대답하였다. 11월 16일 같은 학교 4학년 박사배(朴仕培)·임성춘, 3학년 박종식(朴鍾殖)·백상휴(白相烋)·오상록(吳上祿)·이광우·이인형·정찬규(鄭燦圭), 2학년 양재욱(梁在郁)·이재실李(在實) 등과 북교동(北橋洞) 이광우李(光雨)의 하숙집에서 회합하고, 동맹휴교와 항의시위를 결의하였다. 이인형이 미리 작성해 둔 진정서와 선전 전단에 정정할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자, 다음날인 17일 이인형·임성춘과 함께 이광우의 하숙집에 다시 모여 전단을 수정하였다. 11월 18일 밤 선전 전단을 인쇄하기 위해 남궁조·승륜석·오상록도 함께 북교동에 사는 정찬규의 집에 모였다. 이때 인쇄할 반지(半紙) 약 1,000매는 이인형이 준비하였고, 양재욱은 그의 하숙집인 북교동 김면수의 집에서 등사판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원지(原紙)가 없어 다음날 오전 9시에 시작할 예정이었던 시위운동은 오후로 연기되었다. 그리고 원지를 준비하여 수정 전의 이인형이 작성한 초안에 의해 선전 전단을 인쇄할 것을 약속하였다. 11월 19일 아침부터 자신이 가지고 온 원지를 이용하여 정찬규의 집에서 「이천만 피압박 민중 여러분」,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라는 제목의 선전 전단 등 3종의 전단 약 1,500매를 인쇄하였다. 그리고 양재욱·이재실과 함께 각각 500장씩 교부받았다. 19일 오후 1시경 박성춘·박종식·양재욱·이인형·이재실, 그리고 목포공립상업학교 4학년생부터 1학년생 50여 명과 함께 목포공립상업학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대성동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앞에 모였다. 양재욱·이재실이 참여자들에게 선전 전단과 소형 깃발을 배포하였고, 이재실은 붉은 목면(木棉)의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선두에 섰다. 이에 박종식·양재욱·이인형·임성춘 등과 다른 학생들과 집단을 이루어 각자 지닌 작은 깃발을 흔들고 선전 전단을 살포하면서, “싸우자, 2,000만 동포여! 광주학생을 탈환하자!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라는 내용의 독립가를 부르면서 양동-남교동(南橋洞)·무안통(務安通)을 거쳐 목포역 앞으로 행진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30년 3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30년 11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수감 중인 1930년 4월 15일 뇌막염·기관지 폐렴 등으로 보석 출감하기도 하였다. 풀려난 후 제주도 노형동(老衡洞) 월랑마을에 있는 명신서당(明新書堂) 교사를 지냈고, 1945년 8월 광복 이후 조선식량영단(朝鮮食糧營團)과 제주농산주식회사 상무이사를 역임하였다. 말년에는 목포상업고등학교로부터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예심종결결정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1930. 2. 24.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3. 20.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0. 11. 20. ; 『중외일보』, 1930. 1. 6, 4. 18. ; 『매일신보』, 1930. 3. 3·20. ; 『동아일보』, 1930. 7. 29. ; 제주도, 『제주항일독립운동사』, 1996. ;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북제주문화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