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朴先榮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박종철(朴鍾澈), 창씨명 : 강본창영(江本昌永)
출신지
충북 청주(淸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청주공립제일중학교 재학시 학교의 식민정책 반대, 일본인 학생 구타
생애
1925년 9월 21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북이면(北二面) 용기리(龍基里, 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서 박병석(朴炳錫)과 지분례(池分禮)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이명은 박종철(朴鍾澈)이며 일제 말기에는 일본식 성명 강요로 개명된 강본창영(江本昌永)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활동 당시에는 청주읍 석교리(石橋里)에 거주하였다. 괴산군 증평공립학교를 거쳐 1940년 청주공립제일중학교(현 청주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청주제일공립중학교 재학 중 신사참배와 궁성요배(宮城遙拜) 등을 피하고자 동지들과 뜻을 모았다. 3학년이었던 1942년 5월 5일 개교기념일에 전체 학년의 와우산(臥牛山, 현 우암산) 등산 행사 시, 행진 중에 부르던 일본 승전가를 패전(敗戰)을 뜻하는 가사로 바꿔 불렀다. 이를 동급생인 일본인 사와다(澤田操)가 밀고해 청주경찰서 고등계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사를 받고 난 후 7월 17일 밀고자 사와다를 구타해 전치 약 4주의 상해를 입혔다. 이로 인해 ‘민족적 편견이 있는 반일 불령학생’으로 낙인 찍혀 이른바 상해죄로 구속되었다. 학교에서는 일본 학생을 멸시·박해했다는 등의 이유로 10월 9일 퇴학당하였다. 1942년 12월 11일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해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했으나 1943년 1월 29일 기각되었다.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이 역시 5월 17일 기각되어 원심이 확정되었다.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 광복이 되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 1942. 12. 11. ; 「판결문」, 경성복심법원, 1943, 1, 29. ; 「판결문」, 고등법원, 1943.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