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근석 裵根錫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흥해(興海)
이명(별칭)
배근석(裵根碩)
출신지
경북 안동(安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37년 춘천고등보통학교에서 조직된 상록회와 독서회에 참여하여 항일활동 전개

관련 조직

춘천고등보통학교 상록회, 독서회

생애

1901년 1월 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동부리(東部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흥해(興海)이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배근석(裵根碩)이 있다. 1937년 춘천고등보통학교에서 조직된 상록회(常綠會)와 독서회(讀書會)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안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3년 4월 강원 춘천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35년 3학년 재학 중에 일본인 교사 오카다(岡田)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폭언에 자극을 받은 뒤부터 배일사상을 갖게 되었다. 1937년 3월 4학년 재학 중, 동급생 남궁태(南宮珆)·이찬우(李燦雨)·문세현(文世鉉)·용환각(龍煥珏)·백흥기(白興基)·조규석(曺圭奭)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을 실현할 목적으로 상록회를 조직하였다. 상록회는 회원의 자기완성,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다할 것, 단결력의 양성 훈련, 파벌 투쟁을 배척하여 한민족을 위해 일신을 희생할 것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1937년 4월 5학년이 되었을 때, 상록회가 서적부를 확대·강화하여 독립운동의 투사를 양성할 목적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는 독서회가 상록회와 동질적인 이명(異名)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때 동급생 이풍섭(李豊燮)·이병주(李炳柱)·조흥환(曺興煥)·박규원(朴珪源)·임근호(任謹鎬) 등과 함께 상록회에 가입하였다. 독서회는 “궁극적으로 한국을 일제로부터 독립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진정한 한국인 양성, 회원의 단결심 양성 훈련” 등을 강령으로 삼았다. 독서회를 통해 『조선의 현재와 장래』, 『상록수』 등의 민족주의적 서적을 탐독하면서 민족의식을 더욱 고취시켜 나갔고, 회계를 담당한 이후 회원 확보에도 힘썼다. 그 해 1937년 4월 하순경 전홍기(全洪基), 동급생 서동철(徐東轍) 등을 독서회에 가입시켰고, 5월 1일에는 남궁태·이찬우·용환각 등과 함께 춘천읍 봉의산 정상에서 제1회 월례회를 개최하고 회원들과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한편 민족주의적 문헌의 독후 감상을 발표하였다. 특히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읽고 난 뒤에 “단종의 여섯 충신의 용기와 열의는 우리들 회원이 배워야 하며, 한 번 결정한 목적은 어떤 곤란이 닥치더라도 단호히 실행에 옮기자”며 결의를 보이는가 하면, 「하얼빈 역 앞의 총성」을 통해서는 애국심을 더욱 다졌다. 9월경에는 최기수(崔基洙)·김연환(金練煥)·정인옥(鄭仁鈺)·박일환(朴逸煥) 등의 동급생들에게 상록회에 가입하도록 권유하였다. 1938년 3월 3일 학교를 졸업하고, 7월 20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검사분국 임시공용원으로 들어갔으나, 그해 11월 26일 퇴직하였다. 1938년 12월 상록회를 조직하여 활동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상록회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재학생과 졸업생 137명이 검거되어 춘천경찰서로 끌려갔고, 1939년 5월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36명과 함께 송치되었다. 그해 12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180일을 본형에 산입)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광복 이후 1946년 5월 경북 안동군 조선민주청년동맹(朝鮮民主靑年同盟)을 결성하여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39. 12. 2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2, 1977.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 『사상휘보』 22, 1940. 3. 1. ; 『동아일보』, 1939. 12. 20·21. ; 『매일신보』, 1939. 12. 28. ; 『중앙신문』, 1946. 5. 2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9,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