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실 金玉實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2)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강진(康津)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2)

주요 활동

1921년 11월 14일 목포 정명여학교 만세시위 참여

관련 사건

목포 정명여학교 만세시위

생애

1906년 11월 18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작천면(鵲川面) 군자리(君子里)에서 태어났다. 목포에 있는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현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1921년 목포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 일대의 이권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워싱턴회의(Washington Conference)가 1921년 말에 개최된다는 소식을 신문기사 등을 통해 접하였다. 이 워싱턴회의 개최 사실을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회의에 한국독립문제 상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치고자 결심하였다. 1921년 11월 13일 천귀례(千貴禮), 곽희주(郭喜主), 김나열(金羅烈) 등 11명의 재학생과 함께 학교 기숙사에 모여 다음날 14일 정오 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결의하였다. 이어 동료들과 함께 태극기 수십 장을 만들었다. 14일 오전 수업 종료 후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학교를 빠져나와 남교동, 죽교동, 대성동 등 목포부내로 행진하였다. 정명여학교과 영흥학교 재학생과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가세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1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3년 7월 23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천귀례 외 10인)」, 대구복심법원, 1922. 3. 11. ; 『매일신보』, 1921. 12. 22·26, 1922. 1. 17, 3. 2·12. ; 『동아일보』, 1922. 1. 23, 7. 26.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고정휴, 「워싱턴회의(1921~1922)와 한국민족운동」,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5, 민족운동사학회, 2005. ; 임경석, 「워싱턴회의 전후 한국 독립운동 진영의 대응」, 『대동문화연구』 51, 대동문화연구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