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민 朴濟敏

학생운동 애국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창씨명 : 춘산순일(春山淳一)
출신지
경남 울주(蔚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국장(1990)

주요 활동

대구사범학교 문예부, 연구회 조직 및 활동

관련 사건

대구사범학교 문예부

관련 조직

대구사범학교 문예부

생애

1919년 7월 24일 경상남도 울주군(蔚州郡,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上北面) 명촌리(鳴村里)에서 출생하였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춘산순일(春山淳一)을 사용하였다. 대구에 유학하여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39년 7월 경부선 복선화 공사에 동원된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에 저항한 일명 ‘왜관사건’을 겪은 뒤 독서 토론을 통해 국제 정세를 분석하며 독립을 위한 학생운동을 모색하였다. 1939년 10월 초 대구사범학교에 윤독회(輪讀會)가 조직되어 역사와 문학서적을 읽으며 1940년 1월부터 문예지 『반딧불』을 발행하였다. 1940년 11월 23일 윤독회에 참여하던 이태길李(泰吉)·강두안(姜斗安)·박찬웅(朴贊雄)·유흥수柳(興洙)·문홍의(文洪義)·김근배(金根培) 등이 실력 양성과 민족의식 앙양을 목적으로 하는 문예부(文藝部)를 조직하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비밀을 엄수하고, 매주 토요일 각자 쓴 작품을 가지고 참석하여 작품 감상과 비판을 통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등 다음 해 3월까지 약 9회의 모임을 가졌다. 1941년 1월 23일 이태길·강두안·임병찬(林炳讚)·장세파(張世播)·안진강(安津江)·김영복(金榮宓)·최낙철(崔洛哲)·윤덕섭(尹德燮)·이무영(李茂榮) 등 9명이 문예부와 별도로 연구회(硏究會)를 조직했다. 그 해 2월 이 연구회에 가입하였다. 당시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한국의 독립이 실현될 것을 전망하고, 독립에 대비해 각자의 학문 분야에 매진하여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 독립을 위해 노력한다는 운동방침을 정했다. 이 연구회에 참여하여 농업부를 책임졌다.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경북 경주(慶州)의 하서공립초등학교(현 양남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며 연구회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洪城)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2년여 동안 미결수로 고초를 겪던 중 1943년 10월 대전형무소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예심종결결정」, 대전지방법원, 1943. 2. 8. ; 정세현,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 일지사, 1975.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경상북도사』 중, 1983. ; 광복회대구경북연합지부, 『대구경북 항일독립사』, 1991. ; 대구사범심상과동문회, 『대구사범심상지』, 1991. ;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동지회,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 1993. ; 김일수, 「1920~1930년대 전반기 경북지역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변화」『대구사학』 51, 대구사학회, 1996. ; 변은진, 「일제말 전시파쇼체제하 학생민족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적 성격」, 『국사관논총』 67, 국사편찬위원회, 1996. ; 이기훈, 「일제하 식민지 사범교육」, 『역사문제연구』9, 역사문제연구소, 2002. ; 허종, 「일제강점기 후반 대구사범학교의 학생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7집,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