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길 文德吉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호 : 석담(石潭)
출신지
경남 창녕(昌寧)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국장(1991)
주요 활동
1941년 대구사범학교 다혁당 참가
관련 사건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
관련 조직
다혁당(茶革黨)
생애
1921년 9월 15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생하였다. 대구에 유학하여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인 1941년 2월 15일에 같은 학교 학생인 김효식(金孝植)·배학보(裵鶴甫)·문홍의(文洪義) 등 15명과 함께 당시 대구부 대봉정의 유흥수(柳興洙) 하숙집에 모여 항일 비밀 결사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였다. 일본인 교사의 한국인 학생 차별 대우로 촉발된 ‘왜관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다혁당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각과 독립을 위한 문예활동을 추진해 실력을 양성할 것을 목표로 하였다. 당수로 권쾌복, 부당수로 배학보가 추대되었고, 총무·학술·문예·연구·경기부 등의 부서들 두었다. 다혁당에서 경기부원으로 축구부 책임을 맡았다. 1941년 3월부터 5월까지 여러 차례 비밀 회합을 통해 당원의 비밀 엄수와 절대복종, 주 2회 회합과 하급생 지도 등을 당 규약으로 정하였다. 다혁당 구성원으로서 민족 차별 교육에 반대하여 대구사범학교 연습과 학생(주로 일본인)과 심상과 학생(대부분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철폐시키는 방안도 토의하였다. 그러나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게 입수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2년이 넘게 미결수로 고초를 겪었다. 1943년 11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복역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예심종결서」, 대전지방법원, 1943. 2. 12.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정세현,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 일지사, 1975. ; 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경상북도사』 중권, 1983. ; 광복회대구경북연합지부, 『대구경북 항일독립사』, 1991. ; 대구사범심상과동문회, 『대구사범심상지』, 1991. ;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동지회,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 1993. ; 김일수, 「1920~1930년대 전반기 경북지역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변화」, 『대구사학』 51, 1996. ; 변은진, 「일제말 전시파쇼체제하 학생민족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적 성격」, 『국사관논총』 67, 1996. ; 이기훈, 「일제하 식민지 사범교육」, 『역사문제연구』 9, 역사문제연구소, 2002. ; 허종, 「일제강점기 후반 대구사범학교의 학생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7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