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준 南廷埈

학생운동 애족장(1993)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강진(康津)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3)

주요 활동

1941년 무등회 결성, 1942년 무등회 재건, 1943년 광주서중 제2차 독립운동 지도

관련 사건

광주서중 제2차 독립운동

관련 조직

광주서중 독서회, 무등회

생애

1923년 8월 22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병영면(兵營面) 박동리(朴東里)에서 태어났다. 1940년대 광주서중학교(光州西中學校, 현 광주일고) 재학 중 독서회 활동을 통해 항일운동을 하다가 퇴학 당한 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40년 5월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의 후신인 광주서중학교 재학 중 일본 여행 후 반일사상을 담은 감상문이 문제되어 무기정학을 받았다가, 이후 9월 정학이 해제되어 1941년 복교하였다. 1941년 12월 강한수(姜漢秀)·기영도(奇英度, 일명 기태룡)·유몽룡(柳夢龍)·주만우(朱萬尤) 등과 함께 1938년 결성된 독서회(讀書會)를 무등회(無等會)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1942년 1월 무등회가 일제 경찰에 적발되었고, 강한수·유몽룡·주만우 등과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혔다. 결국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만주로 건너가 봉천(奉天)에 있는 만주복무역회사에서 근무하였다. 한편 1942년 1월 무등회원들의 대규모 검거를 피한 기영도는 배종국(裵鍾國)·신균우(申均雨) 등과 무등회를 재건하였다. 1943년 5월 무등회를 중심으로 학병 지원·창씨개명·일본어 상용·징병제도 반대를 목적으로 이른바 ‘광주서중 제2차 독립운동’으로 불리는 동맹휴학이 전개되었다. 결국 무등회의 활동에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붙잡혀 1944년 9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44. 9. 18. ; 광주직할시사편찬위원회 편, 『광주시사』 제2권, 1993. ; 정병준, 『광복 직전 독립운동세력의 동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