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갑 南相甲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기 양주(楊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42년 4월 5일 학생 비밀결사 흑백당을 조직하여 항일운동 전개

관련 사건

경복무기고사건

관련 조직

흑백당(黑白黨)

생애

1924년 2월 15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현 남양주시) 별내면(別內面) 청학리(靑鶴里)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앙중학교(中央中學校)를 졸업하고, 194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1942년 4월 5일 학생 비밀결사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앙중학교 재학 중이던 1939년부터 경복중학교(景福中學校) 학생 이현상(李賢相),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학생 김성근(金盛槿)·이경춘(李慶春) 등과 함께 민족의식을 키우며 항일 활동에 나서기로 결의하였다. 이들과 함께 학교 인근 숲에 모여 민족차별과 식민지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국제정세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또한 이현상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동향과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전해 들었다. 이현상이 이러한 소식에 밝았던 것은 그의 부친 이병우(李炳宇)가 독립운동가로서 해외 동향에 밝았기 때문이다. 이병우는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그가 경영하던 한약방 ‘공인당(共仁堂)’은 여운형(呂運亨)·한용운(韓龍雲) 등의 밀회 장소이자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처로 사용되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진학 후 서울 봉래동(현 만리동(萬里洞)) 소재 주낙원(朱樂元)의 집에서 동지 7명과 모여 정식으로 항일 비밀결사 흑백당을 결성하고 선언문과 강령·규약을 제정하였다. ‘흑’은 암흑, ‘백’은 희망과 자유를 뜻하므로 암흑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때까지 투쟁하는 비밀결사라는 뜻을 담은 명칭이었다. 선언문에서는 몸과 마음을 바쳐 일제와 투쟁할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조국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을 맹세한다, 조직에 관해 비밀을 유지한다,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한다’는 세 가지 강령을 정하였다. 이현상이 당수를 맡았다. 이때 섭외조직책, 행동책 등 역할을 분담한 가운데 자금책임자를 맡았다. 창당에 참여한 8명이 모두 중앙집행위원을 맡고 조직을 점차 확대하였다. 추가로 7명의 당원을 확보하여 15명이 활동하게 되었다. 흑백당은 일제의 패망과 조국 독립이 머지않았으니 학병을 거부하고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의 격문을 살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최고(崔杲)와 함께 격문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또한 연합군이 서울을 폭격하리라 예상하고 이때에 맞춰 일본인 밀집 지역에 방화와 더불어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이광수(李光洙)·최린(崔麟) 등 친일 인사를 처단하기 위해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의 주거지와 동태를 조사하기도 했으며, 방화 계획 실행을 대비해 휘발유를 구입해 은닉해두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이현상과 홍건표(洪建杓)는 친일 인사 처단에 사용하기 위해 모교인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소총 2자루와 실탄을 훔쳐 삼청동(三淸洞) 숲에 숨겨 두었다. 학도병 징집이 발표되자 중앙상임위원회를 열고 학병을 결사적으로 거부하기로 결의하였다. 학도병으로 동원될 경우 일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입대해 항일 투쟁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1942년 10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학생 김창흠(金昌欽)이 귀향 중 열차 내에서 우리말로 일제의 욕을 하다가 충북 괴산경찰서(槐山警察署)에 붙잡히면서 가택 수색을 당하였다. 이때 흑백당 관련 문서가 압수되어 조직과 활동이 노출되었고, 곧이어 당원 홍건표가 붙잡혔다. 일제 경찰이 다른 당원을 추적하기 시작하자, 일부는 국내에 남아 활동하고 또 다른 일부는 국외 망명을 준비하던 중 국내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한편 이현상·주낙원 등 10명은 계획대로 광복군에 입대하기 위해 1943년 12월 초 2~3명씩 조를 나누어 국경을 넘어 만주로 향하였다. 이들은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重慶)으로 가려고 했으나, 결국 만주와 베이징(北京) 등지에서 모두 붙잡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에 남아 활동하던 중 1944년 1월 서울에서 붙잡혀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4월 대전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44년 12월 6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병보석으로 출옥해 요양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항일 활동으로 인해 1944년 4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제적당했으나, 1946년 복학해 1950년 6월에 졸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국사편찬위원회 편, 『신편 한국사』 50, 2002. ; 중앙교우회 편, 『인물로 본 중앙 100년』, 창미, 2009.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편, 『세브란스 독립운동사』, 역사공간, 2019. ; 김호일, 「1940년대 항일학생운동연구 : 흑백당의 활동을 중심으로」, 『중앙사론』 7,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