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金漢奭

학생운동 애족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북 상주(尙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5)

주요 활동

1935년 4월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비밀결사인 명랑회 조직

관련 조직

명랑회

생애

1920년 8월 12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함창면(咸昌面) 구향리(舊鄕里)에서 아버지 김순진(金順鎭)과 어머니 황복희(黃福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4월 공주(公州)공립고등보통학교(현 공주고등학교, 1938년 공주공립중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였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금원한석(金原漢奭)으로 고쳤다. 박선애(朴仙愛)와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다. 1935년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뜻이 맞는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웠고, 비밀결사인 명랑회(明郞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0년 2월 졸업을 앞두고 공주읍 교외의 웅진강(熊津江) 부근에서 명랑회 회원 이용준(李鎔俊)·김용(金容)·김용갑(金溶甲)·김해인(金海仁)·최낙권(崔洛權)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나서자고 결의하며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우선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대국인 미국과 영국의 원조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그리고 미국·영국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그들에게 반일 의식을 주입해 우리 민족의 독립을 지원하는 세력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미국·영국계 기독교 선교사에 접근하거나, 다수의 한인을 기독교 신자로 모집하는 방법을 계획하였다. 또한 훗날 지도자가 되어 하층 계급의 지식 향상에 힘쓰고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자고 다짐하였다. 1940년 3월 공주공립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4월 일본 도쿄(東京) 소재의 사립학교인 니쇼가쿠샤전문학교(二松學舍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니쇼가쿠샤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 중 공주공립중학교 시절 비밀결사 조직과 활동 사실이 드러나 1942년 8월 12일 도쿄 경시청에 붙잡혔다가 국내로 인도되었다. 1942년 9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7월 22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신분장지문원지」.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3, 1978. ; 국사편찬위원회 편,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 197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상주문화원, 『상주의 항일독립운동』,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