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석 金三錫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고흥(高興)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1993)
주요 활동
1929년 11월 광주학생 시위운동 주도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생애
1911년 5월 4일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풍양면(豊陽面) 송정리(松亭里)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1929년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와 나주 사이의 통학 열차 내에서 일어난 일본인 학생의 한국인 여학생에 대한 시비를 발단으로 충돌이 일어났고, 일본인 경찰이 이를 불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민심을 자극하였다. 이를 계기로 11월 3일 항일 의식을 표출하는 시위가 일어나면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광주중학교 학생들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독서회 활동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던 장재성(張載性)·장석천(張錫天) 등 전남청년연맹 간부들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11월 12일 제2차 시위를 추진하였다. 이때 장재성의 지시를 받아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원인 오쾌일(吳快一)이 격문을 인쇄하자, 김안진(金安鎭)을 통해 수십 매를 전달받았다. 12일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계획대로 독서회원 등이 나서며 광주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일제히 교문을 박차고 나가 선두에서 시가행진을 전개하며 격문을 살포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김향남 외 23인)」, 대구복심법원, 1930.5.15. ; 「형사공소사건부」, 대구복심법원 검사국. ; 「집행원부」, 대구복심법원 검사국.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집, 1977. ; 강재언, 『광주항일학생사건자료』, 풍매사, 1979.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74. ; 『동아일보』 1930.2.15·20·22, 3.1. ; 『조선일보』 1930.2.14·20·22·26~27.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