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문 金載文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북 임실(任實)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6년 6.10만세운동 주도
관련 사건
6.10만세운동
관련 조직
갑성회
생애
1907년 4월 16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임실면(任實面) 성가리(城街里)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중동학교(中東學校) 특과(特科)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에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26년 6월에 일어난 만세운동은 그 해 6월 10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인산일을 기하여 만세시위로 일어난 학생 중심의 민족독립운동이다. 1920년대 민족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학생운동이 각 학교의 분산적인 맹휴에서 벗어나 학생층 전체를 망라하여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항일학생운동으로 발현된 것이 만세운동이었다. 이 만세운동 과정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중등학교(中等學校) 학생 중심의 운동을 계획하고 그 실행을 주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6년 5월 16일 같은 학교 곽재형(郭載炯)·황정환(黃廷煥)과 중앙고등보통학교생 이동환(李東煥)·박용규(朴龍圭) 등과 모임을 갖고, 6월 10일 순종 인산일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각 학교 대표자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학교 간 대항 축구시합을 한다는 명목으로, 같은 해 5월 23일 동대문 밖 삼선평(三仙坪)(현 삼선동)에서 학생 대표 50여 명과 만나 회의를 열었다. 이때 이동환이 이왕이면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인 본정(本町)(현 충무로 일대)을 습격하고 식민통치의 상징인 조선총독부를 때려 부수자고 제의하였다. 다음날인 5월 24일, 서울 통동(通洞)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이동환·박용규·황정환·곽재형 등과 만나 본정 습격에 대한 문제를 토의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습격은 어려우므로 순종의 인산일인 6월 10일에 격문을 뿌리고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하지만 학생 신분으로 너무 크게 거사를 벌이는 것은 무리라는 반대에 부딪혀 그 날 회의는 거기서 일단락되었다. 이후 5월 25일 다시 곽재형·황정환·이동환·박용규 등 대표자 5명과 만나 토의한 결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5월 29일 자신의 집에서 동지들과 모여 격문을 기초하고, 등사판을 빌려서 약 5,000매의 격문을 인쇄하였다. 격문에는 “조선 민중아!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제국주의의 일본이다. 2천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 만세! 단기(檀紀) 4,259년 6월 10일 조선민족 대표 김성수(金性洙)·최남선(崔南善)·최린(崔麟)”이라는 내용을 기재하였다. 이들은 인쇄된 격문을 각각 1,000매씩 나누어 가졌으며, 국장(國葬) 당일에 군중 행렬 속에서 오전 8시 30분을 기하여 일제히 격문을 배포하는 동시에 ‘대한독립 만세’를 고창하기로 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인산일에 참가한 24,000여 명의 학생들은 돈화문(敦化門)에서 홍릉(洪陵)까지 도열하였다. 이날 시내에서 격문을 배포하려다가 실패하자, 다시 황정환과 함께 동대문 밖 숭인동(崇仁洞)으로 가서 국장 행렬이 통과하기를 기다렸다가 봉송(奉送)하는 군중 속에서 격문을 뿌리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26년 만세운동은 학생들이 중심이 되기는 했으나 군중도 합세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제2의 3·1운동과 같은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일제 당국은 경찰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동원하여 시위운동을 탄압하였다. 그 결과 당시 서울에서 붙잡힌 학생 수만 210여 명,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이나 되었다. 어느 정도 시위 분위기가 가라앉자 단순 가담한 학생들은 대부분 풀려났으나 최종적으로 주도 학생 11명은 구속을 당했는데, 이때 주도 학생에 포함되었다. 1926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1927년 4월 1일에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이 확정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7년 9월 20일 풀려났다. 1928년 7월 29일 임실 출신의 학생, 유학생들을 망라하여 조직된 갑성회(甲成會)가 임실청년동맹회관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했는데, 이날 위원으로 선출되어 서무재정부를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26. 11. 17. ; 「판결물」, 경성복심법원, 1927. 4. 1. ; 「身分帳指紋原紙」. ; 『동아일보』, 1926. 6. 15·26, 11. 4·18, 1927. 3. 26, 9. 20. ; 『중외일보』, 1926. 11. 18, 1927. 3. 25, 4. 2, 1928. 8. 5. ; 『매일신보』, 1926. 11. 3·4, 11. 18, 1927. 3. 26, 9. 20·2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7·9권, 1976·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