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金在童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북 김제(金堤)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2009)
주요 활동
1929년 서울에서의 학생시위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항일격문 배포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보성고등보통학교
생애
1910년 7월 30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월촌면(月村面) 연정리(蓮井里)에서 태어났다. 1929년에는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재학하며 관철동(貫鐵洞)에 거주하였다. 이 시기 모친과 누이동생이 각각 농업과 상업으로 집안의 생계를 이끌고 있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지지와 궐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격문을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배포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초에 촉발된 광주학생운동은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서울의 동조 시위는 광주에서 제2차 학생시위를 주도했던 장석천(張錫天)이 11월 17일경 상경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격문 배포와 시위 준비에 들어갔다. 11월 20일을 전후하여 장석천은 보성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 경신학교(儆新學校),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등의 학생들과 접촉하며 시위운동 참여를 적극 권유하고, 운동 방법 등을 지도하였다. 한편 중앙청년동맹 교양부장인 곽현(郭炫)(이명 (郭良勳))은 장석천과 협의를 통해 격문 제작과 배포 활동을 맡았다. 곽현은 동생인 중동학교(中東學校) 학생 곽이형(郭二炯)과 함께 격문 8,000여 매를 제작하였다. 11월 중순 무렵 백산여관(白山旅館)에서 광주학생운동 지지 시위를 논의하기 위해 곽현과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곽현은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학생 시위를 준비 중인데, 후일 격문 제작이 완료되면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배포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미 이전부터 보성고등보통학교의 학생인 문관영(文觀永)·황병인(黃炳仁)·이기표(李錡翲) 등과 광주학생운동 호응 방안을 상의한 바 있어 즉각 승낙하였다. 11월 20일경 곽현을 다시 만나 그로부터 서울 시내 각급 학교의 학생들이 일제히 연합시위를 전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리고 12월 2일 월요일 밤에 곽현으로부터 격문 700여 매를 전달받았다. 이후 보성고등보통학교 건물 뒤에 위치한 숙직실 부근으로 진입하여 중앙 계단을 이용해 2층 교실 전부와 1층 교실 일부에 격문을 살포하였다. 이로 인해 12월 4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1930년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퇴학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0. 4. 5.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49, 2002. ;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광주학생운동 90년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201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 ; 송태은, 「1929년 서울지역 학생시위운동에서 사회주의 학생비밀결사의 역할」, 『서울과 역사』 제96집, 서울역사편찬원,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