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 金大元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김해(金海)
출신지
제주(濟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광주학생 시위운동 주도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생애

1910년 1월 25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우면(舊右面) 한림리(翰林里)에서 김창우(金昶宇)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929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에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 등과 함께 항일학생운동 단체인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독서회는 1926년 11월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이 모여 결성된 성진회(醒進會)의 정신을 이어받은 학내 비밀 모임이었다. 성진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민족적 교양 함양과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을 목표로 내걸고 광주 지역 학생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7년 3월경 형식상 해산되었으나, 광주고보와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 등 학교별로 사회과학 연구 모임이 결성되어 활동을 이어갔다. 1929년 6월 중순 일본 유학 중이던 장재성이 귀국한 뒤 광주 지역 학생운동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장재성은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 대표를 중심으로 독서회 중앙본부를 결성한 뒤 각 학교별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6월 하순 김상환 주도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독서회가 결성될 때 참여하였다. 무등산에 올라 독서회 결성을 결의하고 재정부·조사선전부·조직교양부 등 5개 부서를 조직하였다. 이때 조직교양부 대표에 선임되어 사회과학 등을 연구하는 등 항일 학생운동 조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같은 해 9월 회원 간의 의견 충돌로 독서회를 일시 해산하고 재결성을 준비하였다. 독서회 재결성을 준비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항일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참여하였다. 가두시위에는 광주여고보, 농업학교, 사범학교 학생들도 합류하여 연합 가두시위로 발전하였다. 가두시위 직후 일본 경찰들에 의한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으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독서회 활동과 관련하여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70일 본형 산입) 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 항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 365일 본형 산입)형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광복 이후 고향인 제주도에서 정당에 참여하여 정치 활동을 하였는데, 1955년 5월 제주도 도의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초대 도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2.26.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0.5.15.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10.18.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1.6.1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집, 1977. ;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제1권 분책, 1967. ; 강재언, 『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 風媒社, 1979.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74. ; 최성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 고려원, 2001.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 ; 「광주학생 항일운동 때 광주고보 가두시위 주도」, 『제주일보』, 2019.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