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성 金時成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제주(濟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3)
주요 활동
1928년 광주고보 맹휴 주도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성진회(醒進會)
생애
1910년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에서 월방(月舫) 김창호(金昌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호는 석연(石淵)이다. 태어난 지 4일 만에 아버지를 잃고 4세 때에 어머니마저 사망하여 할머니 송씨와 중부(仲父) 김인호(金仁鎬)가 양육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1926년 11월 광주에서 조직된 항일 학생 비밀결사 조직인 성진회(醒進會)에 가입하였다. 1927년 3월 성진회는 형식상 해산하였으나 매월 1, 2회씩 회합하면서 사회과학 이론을 공부하였다. 1928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1년 선배인 5학년생 이경채(李景采)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자, 학교 측은 바로 그를 퇴학시켰다. 이에 항거하여 6월 26일 1학년을 제외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현’·‘교우회 획득’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단행하자 주도자로 활약하였다. 이때 맹휴를 주도한 대표 학생 25명과 함께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맹휴가 종결된 후, 1928년 10월 하순 당시 광주읍 내 부동정(不動町) 현준호(玄俊鎬)의 집에서 하숙하였는데, 학우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김몽길(金夢吉)·여도현(呂道鉉) 등과 함께 하숙집에서 사회과학 이론을 연구하고 실행을 모색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오사카영어학교에 재학 중, 1929년 11월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와 관련하여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참여했던 성진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에서 체포된 후 광주로 이송되었다.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365일)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 第1卷 分冊, 東京: 原書房, 1967. ; 姜在彦 編, 『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 風媒社, 1979.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74. ; 최성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 고려원, 2001. ; 김찬흡, 『제주 항일인사 실기』, 북제주군북제주문화원, 2005.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