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열 金羅烈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청풍(淸風)
이명(별칭)
김정현(金貞賢)
출신지
전남 순천(順天)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2)
주요 활동
1921년 11월 14일 전라남도 목포 정명여학교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
관련 사건
워싱턴회의
생애
1907년 4월 16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순천면(順天面) 영정(榮町)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이명 김정현(金貞賢)이 있다. 1921년 전남 목포 정명여학교 재학 중 신문 보도 등을 통해 군축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11월에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교내에서 친구들과 토론 등을 경험하며 조국 독립의 염원을 품어 왔으므로 중국 문제와 군축 문제 등을 다루는 워싱턴회의가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민족대표가 회의에 참여해 각국의 전권위원에게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할 적합한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11월 13일, 정명여학교 기숙사에서 천귀례(千貴禮)·곽희주(郭喜主)·문복금(文卜今)·박음전(朴陰田)·김연순(金蓮順) 등 뜻을 함께하는 12명의 학생과 모임을 만들어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친구들과 함께 14일 정오의 오포(午砲)를 신호로 태극기를 휴대하고 교문을 나서 목포 시내를 시위행진하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각자 가지고 있던 백지와 교정의 대나무를 이용하여 태극기 수십 개를 제작하였다. 11월 14일 거사를 모의했던 10여 명의 학생은 오전 수업을 마친 후, 정오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교문을 나서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학교 뒷문을 빠져나온 10여 명의 학생도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 행렬에 동참하였다. 이후 여학생들의 시위에 자극받은 학생들과 청년회원들 역시 만세 시위 운동을 추진하는 등 목포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의 간청으로 14일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지 못했으나, 이후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1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미결구류일수 중 50일 본형에 산입)되었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천귀례 외 10인)」, 대구복심법원, 1922.3.1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권, 1977. ; 『동아일보』 1922. 1.23·3.2. ; 『매일신보』 1922.3-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