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金炳基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장성(長城)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가입, 광주학생 시위운동 주도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생애
1913년 9월 16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북상면(北上面) 덕재리(德在里)에서 태어났다. 1929년 6월 하순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김대원(金大元)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항일 학생운동 단체인 독서회에 참여하였다. 독서회는 1926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과 광주농업학교생 박인생(朴仁生) 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성진회(醒進會)의 맥을 이은 비밀단체였다. 성진회는 사회과학을 연구하며 민족해방의 방안을 모색하였으나, 1927년 자진 해산하였다. 해산 이후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에 소규모 독서회가 조직되어 명맥을 이어갔다.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는 최규창(崔圭昌)과 임주홍(林周弘) 등 주축이 되어 독서회를 조직하였으며, 1928년 6월에는 일본의 식민교육에 항의하는 동맹휴업을 주도하였다. 1929년 성진회 출신 장재성이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유학 중에 귀국한 뒤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농업학교·광주사범학교 대표들과 함께 독서회중앙본부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각 학교에서 독서회 조직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한 뒤, 사회과학 연구를 하며 항일 의식을 각성해갔다. 같은 해 6월 하순 광주고등보통학교 대표 김상환이 20여 명의 학우와 함께 무등산에 올라 독서회를 조직할 당시 참여하였다. 독서회는 산하에 재정부·조사선전부·조직교양부 등 5개 부서를 두고, 오쾌일(吳快一)·김상환·김보섭·윤창하(尹敞夏)·김대원이 각각 부서의 대표로 선임되어 회원들을 지도하며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나주에서 일어난 한일 학생 간의 충돌을 계기로 11월 3일 광주에서 항일 학생운동이 전개되었다. 11월 12일에도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11월 3일 첫 시위행진 당시에는 독서회 회원 이형우(李亨雨)가 무장 시위를 제안하자, 앞장서서 학교 농구실(農具室)을 열고 곤봉을 반출하며 시위 항쟁을 촉구하였다. 이들은 시내 중심지를 돌며 항일 시위를 진행한 뒤 귀교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의 검거 때 70여 명의 학우와 함께 체포되어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금고 4개월,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별도로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독서회 활동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3집, 1977. ; 김정명, 『조선독립운동』 제1권 분책, 1967. ; 강재언, 『光州抗日學生事件資料』, 風媒社, 1979.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74. ; 최성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 고려원, 2001.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