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종 金永鍾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북 안동(安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1)
주요 활동
1945년 조선독립회복연구단원으로 일제에 대한 무력항쟁을 계획
관련 조직
안동공립농림학교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
생애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현 안동시) 임하면(臨河面) 천전리(川前里) 출신이다.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 現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 제10회생이었다. 안동지역 비밀결사단체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에 가입, 항일 활동을 펼쳤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1943년 결성된 비밀결사단체로, 안동공립농림학교(이하 농림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농림학교 동기생 중심으로 단원을 모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농림학교 제10회생으로 그 활동과 취지에 동의하여 함께 하였다. 조직은 참모부, 연락부, 교화부, 신풍부, 특공부로 구성되었으며 점차 안동지역 내 항일의식을 가진 인사들을 포섭해 나가 총 51명의 단원을 규합하였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 때문에 점조직으로 활동하였다. 일제 말 조직된 많은 비밀결사단체들은 한국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펼쳐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 역시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일제의 관공서를 폭파하여 후방을 교란하고 연합군의 상륙을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격투 훈련, 체력 단련 등과 같은 훈련을 비밀리에 실시하며 무장투쟁을 준비해 나갔다. 1944년 말부터 기회를 엿보던 중 1945년 3월 10일 일본 육군 기념일을 거사일로 삼았다. 기념행사가 진행되는 틈에 농림학교 무기고의 총을 탈취한 뒤 헌병파견대와 안동경찰서를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이 무력항쟁에는 안동공립농림학교생들이 결성한 또 다른 비밀결사단체 명성회(明星會)도 함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단원 일부가 다른 사건으로 안동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 받던 중, 조직과 무력항쟁 계획이 탄로나 경북도경과 안동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이로 인해 약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 광복 직후에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형사사건부」. ; 「출옥기념사진」 (1945. 8.18. 촬영). ; 안동농림고등학교 동창회, 『안동농림학생항일약전』, 1978. ; 김을동, 『안동판 독립사』, 1985. ;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편, 『안동근현대사』 제2권, 안동시, 2010. ; 신승훈, 「해방직전(1943~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안동사학』 제12집, 2007. ; 황선익, 「중일전쟁 이후 경북지역 병력동원과 항일운동」, 『한국학논총』 42,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