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 金榮根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이명: 금곡영근(金谷榮根)
출신지
강원 회양(淮陽)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39년부터 춘천중학교 재학 중 독서회 조직, 1941년 춘천중학교 내 한일학생간 민족차별 및 식민지 교육에 항거
관련 조직
춘천중학교(春川中學校) 독서회(讀書會)
생애
1923년 10월 23일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회양면(淮陽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곡영근(金谷榮根)이었다. 춘천중학교 동기 이란(李欄)의 부친 이임수(李林洙)와 친분이 있었던 여운형(呂運亨)이 춘천에 방문했을 때, 다른 동기들과 함께 이임수가 운영하던 관동의원을 찾아가 여운형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소식과 국제 정세 등을 전해 들으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그리고 이란, 고제훈(高濟勳), 권혁민(權赫民), 원후정(元厚貞), 심재진(沈在震)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주로 민족주의 성향의 도서를 윤독, 토론하고 독후감 발표를 가지며 민족의 진로를 모색하였다. 1940년대 학생비밀결사가 전반적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것과 같은 흐름이었다. 이 독서회는 춘천고등보통학교(春川高等普通學校, 1939년 공립 춘천중학교) 재학생들이 결성했던 상록회(常綠會)를 이은 것이었다. 상록회는 월례회, 토론회, 독후감 발표회 등을 통해 항일의식과 독립사상을 키우고 귀농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1938년 가을 부터 1939년 초에 걸쳐 회원들이 대대적으로 붙잡히면서 와해되었다. 상록회원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있었음에도 춘천중학교 학생들은 다시 비밀리에 독서회를 만들었는데 이때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나 상록회 사건의 여파로 독서회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지 못했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朝鮮敎育令) 개정에 따라 모든 고등보통학교는 중학교로 개칭되고 한일 학생이 함께 다니게 되었다. 춘천고등보통학교도 춘천중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전시 총동원체제가 본격화 되면서 일제에 의한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은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보다 철저하고 강압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학생에 대한 차별적 처우도 빈번하였다. 이런 상황으로 한일 학생들 간 대립과 충돌이 자주 발생하였다. 1941년 3월 10일 춘천중학교 교정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이 일어나 대규모 싸움으로 번졌을 때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일본인 학생들과 맞서 싸웠다. 충돌이 일어나자 일제 경찰이 개입하여 반일 학생에 대한 검거를 실시하였다. 이때 붙잡혀 조사를 받던 과정에서 독서회 조직과 활동이 드러났다. 1년간 혹독한 심문과 고문을 겪은 뒤, 1942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육해군형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다른 사건으로 다시 붙잡혀 1944년 2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단기 6월 장기 2년을 받고 재차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윤선자, 「광주학생운동 이후 학생운동의 변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 3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