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배 朴仁培

학생운동 대통령표창(1998)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영암(靈岩)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8)

주요 활동

1929년 전남사범학교 재학 중 학내 비밀결사인 독서회에 가담, 광주학생운동 참여

관련 사건

광주사범학교 독서회

관련 조직

광주사범학교 독서회

생애

1917년 11월 28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곤일시면(昆一始面, 현 미암면) 신포리(新浦里)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광주에 위치한 공립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에 진학하여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2학년 때인 1929년 학교 비밀결사인 독서회에 가입하였다. 사범학교 독서회는 1929년 7월 초순 수피아여고보(須皮亞女高普, 현 수피아여자고등학교) 뒷산에서 송동식(宋東植)·강달모(姜達模)·강문범(姜文範) 등 학생 14명이 모임을 갖고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일찍이 성진회(醒進會)를 주도하였던 장재성(張載性)이 광주로 돌아와 6월 중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광주농업학교, 사범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조직적 단결을 통한 사회주의의 연구와 실행”을 위해 독서회 중앙본부를 결성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독서회 중앙본부는 중앙조직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채 각 학교별 조직 정비에 나섰는데, 중앙본부에서 활동하던 송동식과 강달모 등이 중심이 되어 사범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한 것이었다. 결성 초기 사범학교 독서회는 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로 사회주의 사상 연구를 수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9월 중순 광주형무소 뒷산에서 모임을 개최하여 송동식을 대표로 정하고 회원을 5개 그룹으로 나누는 등 조직을 정비하였다. 언제부터 독서회에 가담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광주학생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1929년 11월 3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한일 학생간의 충돌이 학생시위로 발전하였다. 광주고보와 농업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자 사범학교 학생들도 이에 가세하였다. 이때 학교 동료들과 시위에 가담하여 광주천과 수기옥정(須奇屋町)을 거쳐 학교로 돌아오는 행진에 참여하였다. 임시휴교 후 일본 경찰이 검속에 나서 학생 72명이 붙잡혔다. 그러자 학생들은 구속 학생 석방 등을 요구하기 위하여 다시금 시위를 계획하였다. 일본 경찰과 학교 당국의 엄중한 방해가 있었으나 이를 뚫고 1929년 11월 12일 광주 시내 중등학교들의 연합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는 수기옥정 우편국과 궁정의 광주형무소를 거쳐 사범학교까지 진행되었다. 당일 시위에 사범학교 학생들도 참여하고자 하였으나, 학교 당국이 엄중히 경계하여 동참하지 못하였다. 대신 11월 14일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 조직과 전달에는 각 학교 독서회 회원들이 적극 관여하였다. 광주학생운동 과정에서 독서회 조직이 드러나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았고,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송치되어 조사를 받던 중인 1930년 3월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1930년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개최된 예심결정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면소(免訴)판결을 받고 풀려날 때까지 약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예심종결결정서」, 광주지방법원, 1930. 7. 17. ;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 애국동지원호회, 1956.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