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희 朴采熙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광주(光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2013)
주요 활동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비밀결사)광주학생운동(1929)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비밀결사)
생애
1913년 7월 5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도산리(道山里,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女子高等普通學校, 현 전남여자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 1928년 11월 전남 광주군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장매성(張梅性)의 발의에 따라 남협협(南俠俠)·박옥련(朴玉連) 등 6명은 비밀결사 소녀회(小女會)를 조직하였다. 장매성은 광주학생운동의 주역인 장재성(張載性)의 여동생으로, 장재성은 1926년 11월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현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光州公立農業學校, 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학생 시절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에 참여해 활동한 인물이다.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억압적 상황을 공유하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통해 여성과 무산대중의 해방을 이루고 일본제국주의를 타파하여 민족의 독립을 꾀할 것을 목적으로 매월 1회 회의를 열고 사회과학 연구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1929년 5월 박계남(朴繼男)·박현숙(朴賢淑)·김금연(金錦嬿) 등과 함께 장매성의 집에서 개최하는 월례회에 참석하여 소녀회의 설립 취지에 찬동하여 가입하였다. 1929년 10월 30일 오후 일본인 학생이 기차안에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여학생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광주학생운동이 폭발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의 학생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거리 행진이 시작되자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 현 광주교육대학교) 학생 100여 명의 호응과 더불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일부도 이에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대오가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인 상점은 문을 닫고 들어가는 등 분위기가 점차 격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 투입된 일제 경찰과 소방대에 의해 많은 학생들이 부상을 입었다. 광주학생운동 당시 소녀회 회원들은 광주역 앞에서 붕대와 도포약 등으로 시위 중 부상당한 학생들을 도왔다. 이러한 활동으로 소녀회가 일제 경찰의 감시망에 노출되고 말았다. 광주학생운동의 지원활동을 계기로 1930년 1월 15일 12명의 동지들과 함께 광주경찰서에 붙잡혔다.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10. 6.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조선일보』, 1930. 9. 28. ; 『중외일보』, 1930. 1. 19, 9. 30. ; 『동아일보』, 1930. 9. 30, 10. 1·7. ; 朝鮮總督府 高等法院, 「光州學生事件犯罪者身元調」, 『思想月報』 제1권 제6호, 1931.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