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음전 朴陰田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2)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박음전(朴音全)
출신지
전남 목포(木浦)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2)

주요 활동

1921년 목포 정명여학교 재학 중 만세운동에 참여

생애

1907년 4월 14일 전라남도 목포부(木浦府) 죽동(竹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는 박음전(朴音全)을 사용하기도 하였다.1921년 목포부 양동(陽洞)의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에 다니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신문을 읽어서 태평양회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즉 당시 미국 워싱턴에서는 태평양 연안의 여러 나라 대표들이 모여 평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였으며, 이 회의에 한국을 대표한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1921년 11월 13일 정명여학교 기숙사에 천귀례(千貴禮)·곽희주(郭喜主)·김나열(金羅烈)·박복술(朴福述)·문복금(文卜今)·김연순(金蓮順)·이남순(李南順)·주유금(朱有今)·김옥실(金玉實)·김귀남(金貴南)·김자현(金慈賢) 등이 모인 자리에 함께 하였다. 이 자리에서 태평양회의에 참석한 한국 대표들이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각지에서 그들에게 성원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다음날 정오를 기하여 교문 밖으로 나가 만세를 부르며 목포 시내를 행진하기로 하였다. 시위 준비로 기숙사에서 만세를 부를 때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다음날인 11월 14일 정오가 되자 약속한 대로 태극기를 들고 정문으로 나가 동료들과 만세를 불렀다. 교문을 나가 남교동(南橋洞) 방면으로 행진하였는데, 그들을 보고 여학생 몇몇이 따라나섰다. 이들은 시위대열을 만들어 남교동에서 죽동으로 나아간 다음 다시 창평정(昌平町)으로 행진하였다. 한편 그들에게 자극을 받은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교문을 나와 대성동(大成洞) 방향으로 나아가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만세시위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를 진압하였다. 이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1년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항소심 미결구류일수 50일 본형에 산입)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22. 3. 11. ; 「형사사건부」. ; 『매일신보』 , 1922. 3. 12. ; 『동아일보』 , 1922. 1. 2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