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규 朴容圭

학생운동 대통령표창(1996)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창원(昌原)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1996)

주요 활동

1932년 진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 교내위원회 조직하고 동맹휴학 주도

관련 사건

진주고등보통학교 교내위원회

관련 조직

진주고등보통학교 교내위원회

생애

1914년 12월 7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동면(鎭東面) 태봉리(台封里)에서 태어났다. 1932년 진주고등보통학교(晋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진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 후 3학년 때인 1932년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였다. 동급생인 김환기(金桓璂)·김호배(金琥培)·정성수(丁性洙) 등과 사회주의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고자 뜻을 모아 10월 교내위원회(校內委員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매월 세 차례(3일·13일·23일) 정기모임을 갖기로 하는 등의 방침을 세웠다. 마침 11월 7일이 러시아 혁명 기념일이므로 이날을 기하여 동맹휴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먼저 스트라이크위원회를 조직하고 맹휴계획을 수립하였다. 거사는 세 단계로 나누어 각자 역할을 나누었다. 먼저 거사일인 11월 7일 아침 조회시간에 김호배가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박원지(朴源志)는 미리 준비한 격문을 뿌리기로 하였다. 격문은 “광폭하고 무자비한 일본제국주의 자본가 지주의 충견(忠犬) 스파이를 박멸하자” 등과 같은 내용으로 작성하기로 하였다. 그때 김환기가 적기를 들고 나와 거리행진을 하기로 하였다. 거사를 위해 격문을 준비하고 시위를 함께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거사에 앞서 11월 5일 미리 작성한 격문 20~30장을 학교 근처 벽에 붙여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거사 계획을 일본 경찰이 미리 알아채서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지 못하였다. 더욱이 일본 경찰의 검거망에 걸려들어 신변이 불안해졌다. 결국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아 11월 중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약 한 달 동안 경찰조사를 받은 후 12월 16일 진주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예심에 회부되어 오랫동안 심리를 거친 끝에 1933년 6월 7일 정식재판에 넘겨졌다. 1933년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 및 가택 침입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 1933. 7. 31. ; 『동아일보』 , 1932. 12. 19, 1933. 8. 3. ; 『조선일보』 , 1932. 12. 20, 1933. 6. 11. ; 『사상월보』 제3권 제7호, 1933.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