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일 金奉日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고성(固城)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7년 수원고농 재학시 건아단 참여, 야학활동 및 조선개척사, 계림농흥사 활동
관련 사건
조선개척사사건
관련 조직
건아단(조선개척사)
생애
1905년 3월 16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철성면(鐵城面, 현 고성읍) 월평리(月坪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수원고등농림학교(이하 ‘수원고농’으로 줄임) 학생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1926년 전문학교인 수원고농 농과(農科)에 진학하였다. 입학 후 야학 교사로 활동하는 등 농민층에 대한 교양 활동에 참여하였고 동맹휴학에도 가담하였다. 1926년 6월 수원고농 학생들은 교사 신축 등을 내걸고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는데, 이에 대해 학교 측이 전교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학부모들의 항의와 수원군수의 중재로 동맹휴학 문제는 해결되었다. 1926년 여름방학 때 김성원(金聲遠) 및 김찬도(金燦道) 등이 주도한 조선인학생담화회(朝鮮人學生談話會)에 참여하고 수원고농 내에 김찬도를 지부장으로 한 조선농민사 지부를 설치하였다. 1927년 6월에는 “농민대중을 개발시켜 신조선을 건설하자”라는 강령 하에 건아단(健兒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권투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4월 14일에는 건아단 총회에서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학교 인근인 수원군 고색리(古索里, 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예수교회에 설치한 고색리야학에 교사로 참여하였다. 1928년 6월 도쿄에 본부를 둔 조선농우연맹(朝鮮農友聯盟)의 목표가 건아단과 일치한다고 하여 조선농우연맹의 지부로 가입하였다. 당시 건아단의 단장으로 한전종을 조선농우연맹 조선강연단에 파견하였다. 건아단 순회강연 중 한전종이 연설을 제지당하고 학교로부터 무기정학을 당하자, 건아단은 조직을 계림농흥사(鷄林農興社)로 개편하였다. 한편 수원고농 학생운동의 중심인물이던 김성원은 졸업 후 김해공립농업학교의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수업 중 발언이 문제가 되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때 우종휘와 주고받은 편지가 발각되면서 체포되자 계림농흥사는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의 개편을 단행하였다. 1928년 9월경 김성원 체포 이후 조선개척사 구성원들이 속속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체포 직후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1930년 2월 20일 예심결정 결과 면소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水警高秘 第31**號, 水原高等農林學校 鮮人學生 朝鮮獨立運動 其他에 關한 件」, 1928.9, 『學生盟休에 關한 情報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자자료집』 제13집, 1977. ; 『동아일보』 1927.3.6, 1928.9.16·18. ; 『조선일보』 1930.2.20. ; 김승학, 『한국독립사』, 독립문화사, 1966. ; 조성운, 「일제하 수원고농의 학생운동과 상록수운동」, 『경주사학』 14, 경주사학회, 1995. ; 이현희, 「수원고농학생의 항일투쟁 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21, 한국민족운동사학회, 1999. ; 김호일, 「건아단」, 『한국독립운동사사전』 3,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