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 金旻煥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호 : 단우(丹宇), 이명: 김인수(金仁守)
출신지
경북 경주(慶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6년 비밀결사 성진회 가입, 1929년 광주학생운동 가담
관련 조직
성진회
생애
1910년 6월 20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서면(西面) 대곡리(大谷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단우(丹宇), 이명은 김인수(金仁守)이다. 1926년 광주농업학교에 재학 중, 11월 3일경 항일 학생 결사 성진회(醒進會)가 결성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성진회는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한국 독립 쟁취·사회과학 연구·식민지 노예 교육 반대·언론집회결사의 자유 요구 등을 기본 강령으로 하였다. 또한 매월 제1·3주 토요일에 모여 민족적 교양의 함양과 사회과학을 통한 식민 통치의 부당성을 연구하였으나 1927년 2~3월경 잠정 해산하였다. 1927년 11월 광주농업학교 학생인 김복만(金福萬)·김재룡(金在龍)·문승수(文升洙)·유상걸(柳上杰)·유치오(兪致五)·정동수(鄭東秀)·주당석(朱唐錫) 등이 김태호(金台鎬)의 집에 모여 문승수가 ‘사회과학 연구’를 제안하자, 참석자들은 제안에 찬동하였다. 1928년 2월 11일 졸업을 앞두고 광주군 서방면(瑞坊面) 두암리(斗岩里) 지용수(池龍洙)의 집에서 김광용(金匡溶)·문승수·박무길(朴武吉)·유치오·이동선(李東宜)·임종근(林鍾根)·임주홍(林周弘)·정귀석(鄭貴錫)·정종석(鄭鍾奭)·주당석·최규창(崔圭昌)·하의철(河誼喆) 등 성진회 출신 회원들과 모임을 갖고 졸업 후 항일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였고, 계속 성진회의 사업을 수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모임의 취지는 성진회 회원 중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전남사범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졸업하면 사회주의 연구 지도자를 상실하게 되므로 그 후계자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중 광주농업학교의 후계자로는 유치오와 주당석이 선임되었다. 1928년 3월 광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군농회(郡農會) 기수(技手)로 근무하면서 성진회의 목적을 위해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항일운동에 성진회가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받고 항소하였다.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경주의 이덕윤(李德潤)상점에 점원으로 근무하여 1936년 6월 2일 경주상공회(慶州商工會)에서 근속자에게 수여하는 표창을 받았는데 5년 근속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7.26.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10.27.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1.6.13. ; 「광주학생결사사건 25명 공판회부」, 『매일신보』 1930.7.30. ; 「광주성진회사건 제1회 공판 개정」, 『매일신보』 1930.10.21. ; 「경주상공회서 근속자 표창」, 『매일신보』 1936.6.5.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 ; 한규무, 「성진회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재검토」,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2,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