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진 金正鎭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의성(義城)
출신지
경북 봉화(奉化)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43년 태극단에 가입해 비서장과 회계관으로 활동
관련 조직
태극단, 건아대
생애
1925년 12월 26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내성면(乃城面) 해저리(海底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금원정진(金原正鎭)으로 고쳤다. 저명한 유림인 부친 김홍기(金鴻基)는 김창숙(金昌淑)과 4종 숙질(叔姪)사이로, 김창숙의 파리장서(巴里長書)와 제2경북유림단(慶北儒林團) 활동을 지원하다 경찰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1943년 조국독립을 위한 항일학생비밀결사단체인 태극단(太極團)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1943년 4월 중순 대구공립상업학교(大邱公立商業學校, 현 대구상원고등학교) 4학년생 이상호(李相虎)가 5학년생 김상길(金相吉)·서상교(徐尙敎)와 의기 투합하여 조직한 항일학생비밀결사이다. 이들은 조직의 명칭을 독립국가로서 구한말부터 사용되어 온 태극기에 착안해 ‘태극단’이라고 하고, 약칭으로 ‘T.K.D’라고 쓰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조직 부서를 논의하고, 단장은 이상호, 체육국장과 관방국장은 서상교와 김상길이 각각 맡기로 합의하였다. 이들은 동지를 규합한 후 정식으로 결단식을 거행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대구공립상업학교 뿐 아니라 대구공립직업학교(大邱公立職業學校, 현 대구공업고등학교) 학생까지 포함해 2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 당시 1939년 대구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1943년 4월 무렵 태극단에 가입하였다. 1943년 5월 초 동지들이 모이자 태극단의 구체적인 조직 편제에 착수하였다. 조직은 일반조직과 특수조직으로 구분되었다. 일반조직은 다시 육성부(育成府)를 정점으로 체육국·과학국·관방국(官房局)의 3개 조직으로 나누었다. 체력단련과 과학연구를 통해 심신의 발전을 도모하고 항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육국과 과학국을 두었다. 체육국 산하에는 무도부·등산부·군사부·경기부·씨름부, 과학국 산하에는 박물부·이화부·항공부 등을 설치하였다. 그 외에 기획·법안·규약 등을 담당하는 관방국 산하에 비서관·부관·회계관을 두었다. 최고 의결기관은 간부회의였으며, 성원은 부장 이상이었다. 이처럼 태극단의 구체적인 조직 편제가 이뤄졌을 때 비서장과 회계관을 겸임하였다. 특수조직으로는 중학생과 국민학생을 대원으로 하는 건아대(健兒隊)를 조직하였다. 건아대는 5개로 나누고 학년에 따라 간부와 간부보, 건아장(健兒長), 건아 등으로 구분하였다. 태극단은 민족의 이상적인 결속과 능률로써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당면 목표로 세우고, 세계 인류의 평화·자유·평등의 획득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학교와 지역별 조직을 완성한 후 국내외에 여론을 환기하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먼저 일제에 독립을 요청하고 여의치 않으면 폭동을 일으켜 무장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국내 투쟁이 불가능할 경우 중국으로 망명해 중국 정부의 군사 후원을 받아 독립을 쟁취할 것도 구상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조직 확대에 주력하였다. 이때 동지 규합에 나서 대구공립직업학교 학생을 가입시키고, 건아대원을 모집하는데 힘을 쏟았다. 아울러 인도의 간디(Mahatma Gandhi)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 관련 서적을 읽으며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학술 연구와 체력 증강에 나섰다. 글라이더와 폭발물 제조 등 군사학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태평양전쟁의 전황(戰況)과 일제의 패전, 한국 독립의 가능성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할 것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1943년 5월 말 결성식을 준비하던 중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단장 이상호가 붙잡혔다. 조사 과정 중 이상호의 집 천정에서 태극단 조직강령 등의 문서를 찾아낸 일제 경찰에 의해 서상교·김상길 등과 함께 붙잡혔다. 함께 붙잡힌 30여 명의 단원들과 함께 가혹한 고문을 받았고, 1944년 1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3년을 받았다.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증언자료집』 1·2, 2002. ; 『대구시보』 1945. 12. 12. ; 대구상업정보고등학교총동창회 편, 『태극단학생독립운동』, 2001. ; 허종, 「일제하 전시체제기 대구지역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항일비밀결사를 중심으로」, 『대구사학』 110,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