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실 金容實

학생운동 대통령표창(201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하동(河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0)

주요 활동

1943년경 진주공립중학교 학생들과 광명회를 조직하고 민족의식 고취 활동 전개

관련 조직

광명회

생애

1928년 6월 3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양보면(良甫面) 감당리(甘棠里)에서 태어났다. 1941년 진주공립중학교(晉州公立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43년 진주공립중학교 3학년 재학 중 일본 구문사(歐文社)에서 주관한 영문 첨삭회(添削會)에 참여하였다. 동급생들과 영문 잡지로 공부하는 동시에 해외 독립운동 소식 등을 토론하며 항일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1943년 4월 강필진(姜必鎭)·김상훈(金相勳)·박노근(朴魯瑾)·유한성(柳漢成)·장선택·전용순(田溶純)·조용·정규섭(鄭奎燮)·정원섭·하익봉(河益鳳)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광명회(光明會)를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광명회 회원들은 당시 감시가 매우 심했던 상황 때문에 모두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3~4명씩 나눠서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모임에서 한국 역사를 공부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광명회 회원들은 일부 친지의 독립군 활동 소식을 비롯한 김좌진(金佐鎭) 등 만주의 항일무장투쟁 역사를 전해 들으면서 졸업 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군에 참여할 것을 맹세하기도 하였다. 1944년 9월 진주공립중학교 학생들은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로 진해 해군비행장 건설공사에 동원되어 막사에서 공동숙식을 하면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다른 광명회원들과 함께 건설 공사장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독립군의 활동을 은밀히 전하였다. 1944년 9월 23일 이 일이 발각되어, 다른 동지들과 함께 진해헌병대에 붙잡혔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같은 해 11월 2일 부산지방검찰청에 송치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6월 가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학적부」, 진주고등학교. ; 『퇴학전학자명부(1925~1948)』, 진주고등학교. ; 『재감인명부』, 조선총독부형무소. ; 『재소자인명부』, 부산구치소, 1945. ; 진주고등학교, 『진고80년사』, 2005. ; 송찬순, 「진해 헌병대 사건의 진상을 밝힘」, 진주고등학교 동창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