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金容俊

학생운동 애족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전남 광주(光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29년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참여,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참여

관련 사건

광주학생운동

관련 조직

독서회

생애

1910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복동(福洞)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광주고보, 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재학하며 독서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광주의 학생들과 사상단체는 독서회·연구회 등을 통해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새로운 사상 학습과 확산에 힘을 쏟았다. 1929년 6월에는 전 성진회원이며 전남청년연맹 간부인 장재성(張載性)의 주도로 광주고보, 광주농교, 광주사범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서회중앙부(讀書會中央部)’가 조직되었다. 1929년 6월 하순경 광주고보의 김상환(金相換)·김보섭(金普燮)·윤창하(尹敞夏)·김대원(金大元)·오쾌일(吳快一)·장재성 등은 먼저 광주 시내 서남리(瑞南里)에 위치한 최규문의 집에서 광주고보 독서회 조직에 관한 기본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20여 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을 가지고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은 인근 지역에서 통학하는 한·일 학생간의 누적된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1929년 11월 3일 오후 1시경 광주고보 학생들은 본정통(本町通)·광주우편국·광주도립병원 등에서 시위행진을 벌인 후, 오후 3시경 학교로 돌아와 해산하였다. 이 일로 11월 5일과 12일 다수의 학생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그 해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퇴학 명령을 받았다.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해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의 1심과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의 항소심에서 금고 4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그리고 독서회 관련 14명과 함께 다시 예심을 거쳐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다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70일 본형에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365일 본형에 산입)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1년 12월 5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0. 5. 15.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7. 17.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0. 10. 18. ;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31. 6. 13. ;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31. 8. 1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광주학생독립운동사』, 1974. ; 최성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 고려원, 2001. ; 한규무, 『광주학생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김성민, 『1929년 광주학생운동』, 역사공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