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金永瓚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경남 동래(東萊)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0)
주요 활동
1942년 조선독립당 활동
관련 조직
동래중학교, 조선독립당, 지일회, 순국당
생애
경상남도 동래군 복천동(福川洞) 출신이다. 1942년 비밀결사인 조선독립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봄 동래중학교(東萊中學校) 5학년 재학 중 동래중학교 항일학생조직인 조선독립당(朝鮮獨立黨, 또는 (釜山獨立靑年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독립당은 1941년 겨울 동래중학교 학생 김일규(金一圭)·양중모(梁仲模) 등이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서약하고 조직하였던 비밀결사였다. 1940년 부산공설운동장학생의거 때 퇴학당했던 남기명(南基明)과 동래중학교 재학생 양중모(梁仲模)·김일규(金一圭)·김병현(金柄鉉)·김진훈(金鎭焄) 등이 조직했던 독서회(讀書會)를 강화·개편하였다. 조선독립당에 가입하던 1942년 봄, 조선독립당은 2차 회합을 갖고 강령을 정하는 한편, 항일투쟁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세우며 본격적인 활동 준비에 들어갔다. 1943년 졸업과 함께 실제 행동을 개시하였으며, 당원 간의 연락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암호를 사용하였다. 청소년 훈련과 병기계통 연구를 담당하는 한편, 행동반(行動班)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8월 1일 조선독립당의 당원들은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분석하고 군사기밀 탐지, 일본군 탄약고 폭파, 군용열차 통과시 구포(龜浦)다리 폭파 등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거사가 실패할 경우에는 일본군에 입대한 후 연합군 진영으로 탈출하여 중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대비책도 세워 놓았다. 한편 조선독립당은 부산지역의 항일결사 자일회(紫一會)·순국당(殉國黨) 등과도 연락을 취하면서 광범위한 항일투쟁을 전개하려 하였다. 1944년 5월 결성된 순국당은 조선독립당원 이관수(李觀洙)가 지도하였기 때문에 조선독립당과는 활동 내용이나 조직 등이 거의 유사하여 세포당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전인 1944년 7월 그 조직이 드러났고, 곧이어 8월에 조선독립당의 조직도 발각되었다. 1944년 8월 당원 10여 명과 함께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가 백기호와 함께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당원들은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검찰청으로 이송되어 부산형무소 미결감방에 수용되었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조선독립당 당원들은 광복 후인 1945년 8월 18일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수감자명부」 (부산교도소, 1944. 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9권, 1977. ; 부산직할시사편찬위원회, 『부산시사』, 1989. ; 金錫禧, 「일제말기 부산의 항일운동」, 『부산학생항일의거의 재조명』, 1992. ; 조동걸, 『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3. ; 정병준, 『광복 직전 독립운동세력의 동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