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金永驥

학생운동 애국장(1990)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충남 부여(扶餘)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국장(1990)

주요 활동

19930년대 대구사범학교 교사로 학생들의 민족의식 고취

관련 조직

대구사범학교 문예부

생애

1901년 9월 14일 충청남도(忠淸南道) 부여(夫餘)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충남임시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7년 일본 도쿄(東京)의 다이토분카학원(大東文化學院)에 입학하였다. 동 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1930년부터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의 촉탁으로 2년간 근무하면서 중학교용 『중등교육 조선어』와 『한문독본』을 편찬하였다. 1932년부터는 대구사범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조선어(한글)’와 한문을 가르쳤다. 조선어 시간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강의하여 학생들에게 한국 민족의 긍지를 심어 주었다. 또한 식민 지배 하에서 민족혼을 일깨우는 데에는 문학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고, 우리나라의 역대 시조 100수를 선별하여 주석을 붙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때 시조의 제작 연대는 단기(檀紀)를 사용하였다.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추구한 민족정신의 함양은 자연스레 식민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1939년 ‘대구사범학교 왜관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진 대구사범학교 학생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39년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낙동강 철교의 복선공사에 노력 봉사로 강제 동원되었을 때, 일본인 교사가 한국인 학생들을 차별하자 이에 반발한 한국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를 폭행하여 7명이 퇴학당하고, 11명이 무기정학을 당한 사건이다. 왜관 사건 이후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비밀 결사인 문예부(文藝部)·연구회(硏究會)·다혁당(茶革黨)의 결성과 1940년 1월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교양지 『반딧불』 발간에 영향을 미쳤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게 발각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같은 해 8월 일제 경찰에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그 뒤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스승의 대구사범학교 문예부와의 관련을 부인한 제자들의 도움으로 1942년 1월에 풀려났다. 광복 후 대구사범학교 교장, 경북교육회 회장 등을 지냈고, 서울시 교육위원, 문화위원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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