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형 金林瀅

학생운동 애족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출신지
제주(濟州)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애족장(1995)

주요 활동

1936년 독서회 우리학교 조직, 1937년 3월부터 1938년 3월까지 사회주의와 항일사상을 전파

관련 조직

독서회 우리학교

생애

1915년 12월 30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좌면(舊左面) 세화리(細花里)에서 출생하였다. 1930년대 중반 제주 지역에서 학생운동에 나섰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2년 제주도의 하도보통학교(下道普通學校)를 졸업한 다음 같은 해 4월 협성실업학교(協成實業學校) 상공과(商工科)에 입학하여 1학기를 수료하였다. 이어 경신학교(儆新學校)로 전학한 다음 1학년을 마쳤다. 다시 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中央基督敎靑年會學校) 고등과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재학 중에 퇴학하였다. 1934년 4월 만주국(滿洲國)으로 건너가, 간도 룽징시(龍井市)에 위치한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의 3학년으로 편입하여 1935년 3월 4학년을 마쳤다. 그리고 동년 4월에 경성공업학교 기직과(機織科)에 입학하여 1938년 3월 졸업하였다. 일제 당국에 의해 붙잡힐 당시에는 경성부(京城府) 가회정(嘉會町)에 거주하였으며, 신장은 159cm로 기록되어 있다. 룽징의 동흥중학교에서 수학할 당시 같은 학교의 좌익 성향 교사에게 감화되어 공산주의 사상에 공명하였으며, 이 이념이 곧 우리나라를 일본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할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같은 지향 아래 독립 방안을 강구하기에 몰두하였다. 먼저 1936년 5월 초 같은 학교 학생인 김종천(金鍾千)·박병윤(朴炳允)과 회합하고 지식의 함양을 위해 독서회 ‘우리학교’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동창생들을 모집하여 이 모임에 출석하도록 했으며, 사회주의 지식 보급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7년 3월 하순경부터 1938년 3월 상순경까지 명륜정(明倫町)에 위치한 임한묵(林漢黙)의 자택에서 세탁공이던 주세원(周世元) 등과 동거하였다. 여기서 이들은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해 자유주의 진보적 사상을 가진 청년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외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 단순한 문학 연구를 표방한 모임을 결성하였으나, 실제로는 청년들에게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학습하게 하여 사회주의와 항일사상을 전파하는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와 같은 활동 중 1938년 5월 7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1938년 12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50일 본형에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41년 10월 19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38. 12. 9.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김임형(金林瀅)」, 국사편찬위원회. ; 『동아일보』, 1932. 4. 19, 1935.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