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갑 白春甲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수원(水原)
이명(별칭)
호 : 송암(松巖)
출신지
경북 영일((迎日)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2006)
주요 활동
1931년 학생대표자회 가입 후 반전반제운동 전개
관련 조직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학생대표자회
생애
1909년 (음)2월 16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송라면(松羅面) 광천리(光川里, 현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광천리)에서 아버지 백남용(白南容)과 어머니 곽현동(郭現同) 사이에서 2남 4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송암(松巖)이다. 서두리(徐斗里)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1928년 대구의 사립 교남학교(嶠南學校)에 입학하여 1932년 3월 졸업하였다. 1931년 7월 교남학교 4학년 재학 중 비밀결사 학생대표자회(學生代表者會)를 결성하였다. 학생대표자회는 1931년 4월 조선공산당을 재건할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의 산하 조직인 사회과학연구회(社會科學硏究會)와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과학연구회는 1931년 6월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와 연계를 가지면서 대구에서 활동하던 김일식(金一植)·염필수(廉弼守)·이경석(李璟錫) 등이 조직하였고, 공산주의 이론의 연구와 실천이 목적이었다. 동시에 학생들의 사회과학 연구와 혁명투사의 양성을 위한 학생 조직의 결성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경석의 제안으로 학생 조직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뜻을 같이하는 학생을 물색한 끝에 대구상업학교 학생 이동우(李東雨)에게 조직의 취지를 설명하고 가입시켰다. 1931년 7월 13일 대구 교외 공동묘지에서 대구고등보통학교 출신의 김일식·이경석·이재우(李載雨), 대구상업학교의 이동우, 계성학교의 조홍기(趙鴻基) 등과 학생대표자회를 결성하였다. 학생대표자회는 대구의 중등학교에서 학생운동의 경험이 있거나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다. 조직 목적은 학생들에게 공산주의를 연구하게 하고 혁명의식을 키워 자본주의 사회를 타파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학생대표자회를 결성한 이후 1931년 11월까지 자택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회원들과 파업이론, 공산주의 등 사회과학을 학습하였다. 나아가 일제를 타도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반전반제(反戰反帝)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1931년 12월 2일 붙잡혀 미결 상태에서 1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1932년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고 1932년 12월 3일 풀려났다. 풀려난 후 일본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진학하였으나 중도에 그만두었다. 귀국하여 경북 영일군 송라면 방석리(芳石里)에서 야학을 개설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한글과 역사를 가르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1948년 8월 이재우·최흥봉(崔興峰)·서명출(徐命出)과 함께 황해도 해주에서 개최되는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의 영일군 대표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32. 12. 2. ; 『조선일보』, 1931. 12. 4·5. ; 『중앙일보』, 1931. 12. 4. ; 『동아일보』, 1932. 2. 9. ; 『조선중앙일보』, 1948.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