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기 白湘基

학생운동 건국포장(1995) 내국인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이명(별칭)
창씨명 : 백천상기(白川湘基)
출신지
전남 장성(長城)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건국포장(1995)

주요 활동

1944년 민족의식 고취

생애

1927년 1월 27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동화면(東化面) 구림리(九林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백천상기(白川湘基)로 고쳤다. 1944년 사립 문태중학교(文泰中學校)에 재학 중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41년 4월 목포로 유학하여 사립 문태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문태중학교는 문재철(文在喆)이 자금을 지원하여 1940년에 개교한 중등학교였다. 입학 후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압박을 인식하면서 일제가 전쟁 협력 강요를 위해 내세운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3년 하반기 연합군이 일본 본토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자,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패전할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이때 한국도 문화·경제·인적 방면에서 향상되면 미국이 한국 독립을 승인하여 일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달성할 것이라 믿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던 중, 4학년이던 1944년 7월 12일, 후배인 2학년생 박본순(朴本淳)을 만나 일본은 연합군에 반드시 패할 것이고 그 뒤 미국은 한국을 독립시켜 줄 것이라며, “현재 미국 내에 조선 독립 정부가 있는데, 지금 우리가 한국 독립을 위해 실력을 양성하고 한국 독립에 뜻이 있는 자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설득하여 함께 뜻을 결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거사를 펼치기도 전에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5년 6월 15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8월 15일 광복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1945. 6. 15. ; 『동아일보』, 1939.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