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석 權重錫
인적 사항
생몰년월일
본관
안동(安東)
출신지
경북 안동(安東)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훈격
대통령표창(2011)
주요 활동
민족의식 함양, 무장봉기 추진
관련 조직
안동농림학교 대한독립회복연구단
생애
1926년 2월 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읍(安東邑) 법상동(法尙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다. 1943년 일제는 징병제를 강제하여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일제의 탄압이 가중될수록 청년·학생들은 한글 서적을 돌려 읽으며 항일 의식을 함양하는가 하면, 단파방송을 청취하며 조국 광복을 예견하였다. 1943년부터 안동농림학교 학생들 간에는 자연스럽게 항일 독립운동에 나서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그 결과 1944년 10월 5학년(8회) 권영동(權寧東)·윤동일(尹東一), 4학년(9회) 황병기(黃炳基), 3학년(10회) 서정인(徐正寅) 등을 중심으로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참모부·교화부(敎化部)·연락부·신풍부(神風部)·특공부(特攻部) 등의 조직을 두었다. 조직 구성에서 보듯이 전투적인 항일 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교련 수업용 무기를 탈취하여 안동경찰서와 헌병파견대를 습격, 점령한 후 주민들을 궐기시켜 의성(義城)까지 진출하여 대구의 일본군 부대와 교전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후 동단은 안동농림학교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과 경주중학교(慶州中學校) 학생들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단원이 60여 명에 달하였다. 안동농림학교 학생은 아니었으나, 평소 권투를 연마하면서 한인 차별 대우에 분노를 품고 있던 중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의 권유로 동단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일본군 육군기념일로 경비가 허술한 1945년 3월 10일을 거사 일로 정하고 무장봉기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때 특공부로 경찰서 등 일제 주요시설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2월 초부터 각지의 단원들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노출되어 3월에는 단원들이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3월 1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옥중에서 재판을 기다리다가 광복을 맞아 기소유예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형사사건부」, 조선총독부 재판소. ; 안동농림고등학교동창회, 『안동농림항일투쟁약전』 1978. ; 안동농림학교, 『안동농림40년사』, 1973. ; 안동농림학교, 『안동농림50년사』, 1983. ; 김을동, 『안동판 독립사』, 1985. ; 『대구매일신문』 1982.8.5. ; 송지향, 『안동향토지』, 1983. ; 신승훈, 「해방직전(1943~19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안동사학』 12, 2007.